우리 외로운 인간들은 이 드넓은 우주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어 한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나의 고향인 전라도로 여행을 갔다. 여행자의 시각에서 본고향은 가깝고도 낯선 그런 동네였다.
시어머님, 아주버님, 남편, 아들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었는데, 어느 때보다 들떠있었다. 왜냐면 우리 가족들에게 이제까지 내 삶의 절반을 보낸 익숙한 곳을 소개할 수 있었으니깐.
어쩜 고향 가는 길은 고속도로 휴게소마저 친근하다. 우리 가족이 정안알밤 휴게소에서 내려서 아침을 먹었을 때 나는 “그래, 나 맨날 서울에서 내려가거나 올라올 때 이 휴게소를 들렸어. 그땐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았는지”라고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익산 톨게이트를 지나 익숙한 왕궁 보석박물관이 나왔을 때는 “이 박물관은 내가 대학교 때 지어진 거야”라든지,
첫 번째 여행코스인 미륵사지에 도착했을 때는
초등학교 때 매년 빠지지 않는 소풍장소가 이곳이었다고, 그때는 허허벌판에 저 탑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여행코스인 왕궁다원을 가기 위해 ‘금마’를 경유했을 때는 여기에 살았던(지금도 부모님은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 이야기를 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송학동 오리고기 집에서는 그 음식점 옆에 사는, 나보다 공부를 잘해서 사범대에 간, 하지만 성격이 좋지 않아 선생님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는 친구 이야기를 했다.
다음 코스인 전주 한옥마을에 가기 위해 ‘백구’를 경유하고 있을 때는 이곳에서 개농장을 했던 친구 이야기를 했고, 그 집 엄마가 나를 그렇게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다음 날 김제 평야 지평선을 달리며 오빠에게
“내 친구 경희가 여기서 초등학교 선생님 하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오빠가 실소를 터뜨리며
“너도 이제 아줌마가 다됐네. 어머님 모시고 안성(고향) 가면 누구네 집 누가 어쨌다…… 이런 얘기를 신호 지날 때마다 하는데, 너도 똑같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오늘 내 모습은 영락없는 아줌마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오빠는 “나는 나이 들어도 너처럼 남 이야기는 안 할 거야 ~ 그래서 내가 인간관계를 안 맺는 거고” 말했다.
사람은 익숙한 곳에 가면 사돈에 육촌까지 끌어다 자신의 인맥을 괄시한다. 아니 괄시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아는 체라고 해두자.
어머님의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고 그냥 나이 든 어른이 하는 말인가 보다. 했는데, 역지사지로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이제 익숙한 곳에 가면 앞집, 옆집, 뒷집, 동창, 동창의 친구까지 다 등장시키는 어른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첫째는 그냥 생각이 나서,
둘째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셋째는 왕년에 인기 많았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넷째는 그 사람이, 그 나이가 그리울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