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출근길 성장 에세이 Aug 11. 2021

 옆집 형길이네와 앞집 경희네

우리 외로운 인간들은 이 드넓은 우주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어 한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나의 고향인 전라도로 여행을 갔다. 여행자의 시각에서 본고향은 가깝고도 낯선 그런 동네였다.


시어머님, 아주버님, 남편, 아들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었는데, 어느 때보다 들떠있었다. 왜냐면 우리 가족들에게 이제까지  삶의 절반을 보낸 익숙한 곳을 소개할 수 있었으니깐.


어쩜 고향 가는 길은 고속도로 휴게소마저 친근하다. 우리 가족이 정안알밤 휴게소에서 내려서 아침을 먹었을 때 나는 “그래, 나 맨날 서울에서 내려가거나 올라올 때 이 휴게소를 들렸어. 그땐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았는지”라고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익산 톨게이트를 지나 익숙한 왕궁 보석박물관이 나왔을 때는 “이 박물관은 내가 대학교 때 지어진 거야”라든지,


허허벌판에서 공원으로 바뀐 미륵사지


첫 번째 여행코스인 미륵사지에 도착했을 때는

초등학교 때 매년 빠지지 않는 소풍장소가 이곳이었다고, 그때는 허허벌판에 저 탑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여행코스인 왕궁다원을 가기 위해 ‘금마’를 경유했을 때는 여기에 살았던(지금도 부모님은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 이야기를 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송학동 오리고기 집에서는 그 음식점 옆에 사는, 나보다 공부를 잘해서 사범대에 간, 하지만 성격이 좋지 않아 선생님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는 친구 이야기를 했다.



다음 코스인 전주 한옥마을에 가기 위해 ‘백구 경유하고 있을 때는 이곳에서 개농장을 했던 친구 이야기를 했고,   엄마가 나를 그렇게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다음 날 김제 평야 지평선을 달리며 오빠에게

“내 친구 경희가 여기서 초등학교 선생님 하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오빠가 실소를 터뜨리며

“너도 이제 아줌마가 다됐네. 어머님 모시고 안성(고향) 가면 누구네 집 누가 어쨌다…… 이런 얘기를 신호 지날 때마다 하는데, 너도 똑같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오늘 내 모습은 영락없는 아줌마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오빠는 “나는 나이 들어도 너처럼 남 이야기는 안 할 거야 ~ 그래서 내가 인간관계를 안 맺는 거고” 말했다.


사람은 익숙한 곳에 가면 사돈에 육촌까지 끌어다 자신의 인맥을 괄시한다. 아니 괄시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아는 체라고 해두자.


어머님의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고 그냥 나이 든 어른이 하는 말인가 보다. 했는데,  역지사지로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이제 익숙한 곳에 가면 앞집, 옆집, 뒷집, 동창, 동창의 친구까지 다 등장시키는 어른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첫째는 그냥 생각이 나서,

둘째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셋째는 왕년에 인기 많았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넷째는 그 사람이, 그 나이가 그리울 수 있어서……


작가의 이전글 48개월 전에 아이를 둔 부모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