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출근길 성장 에세이 Aug 26. 2021

그대여 아무걱정하지말아요

만약 내가 아니라 오빠가 그랬다면, 나는 어땠을까?

2021년 7월 5일, 정확히 한 달 하고 보름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맨 처음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의사가 악성종양이라고 했을 때.

정말이지 기분이 묘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처럼 막 펑펑 울어야 되나? 싶기도 하고

지금 눈앞에서 이야기하는 의사 선생님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암'이라는 상황 앞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사실 놀라서 아무 반응도 못했었다. 그저 담담히 의사의 이야기를 들음과 동시에 눈에서는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사람이 만수무강할 수 없으니 언젠가 나이가 들면 질병에 걸려 죽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질병이란 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을 몰랐던 것이다. 

만 나이 서른네 살에......


개인병원에서 조직 검사지를 받고 종합병원에 가는 날까지,

남편의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표정이 어두웠고 오히려 나보다도 더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진단명을 받고 오빠에게 전화했다. 

"오빠 암 이래. 근데 암보다도 염증이 더 심각하데, 어차피 전이도 안된 거 같고......"

오빠에게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전화를 했다. 


"그래. 내가 너 고생시킨 거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예상대로 오빠의 답변은 어두웠다. 


그날 저녁 오빠는 결혼해서 박사한 다시고 고생시킨 거,

다시 6년 전으로 돌아가면 당장 학교를 때려치우고 취업했을 거란 이야기. 

원하는 아파트 못 살게 해 줘서 미안하다는 이야기.

6년 동안 가장으로 일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암이 생겼다면서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이제부터 매일 자기 전 기도하겠노라고, 

짧게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겠노라고,


지금 나는 오히려 '암'을 잊을 정도로 너무 의젓하고 멀쩡하다. 

암 선고 그다음 날, 보험 진단료를 알아봤고, 

암을 근거로 회사를 쉴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고,

그리고 9월부터 휴직에 들어가게 돼서 마음이 가볍고 기쁘다. 

게다가 오늘 암진단금 2천만 원이 통장으로 입금됐다. 지난주에는 진단금 300만 원도 입금됐고......

그래 이 돈 안 받고 안 아프면 좋겠지만, 이왕 아프다면 돈이라도 받고 아픈 게 낫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오빠는 슬픈 돈이 라면서 

나의 암 소식에서 아직 회복이 덜 된 모습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일찍 나를 아파트로 입성시키기 위해

이전보다 부동산 투자에 더 매진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대출의 '대' 이야기도 못 꺼냈지만 이제는 본인이 먼저 민간임대든, 분양이든 찾아서 빠르게 움직인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만약 오빠가 아팠다면, 나는 어땠을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오빠가 너무 미워서,  지금까지 고생시키고,

앞으로 더 고생시킨다고 마음속으로 오빠를 원망했을 거 같다. 


얼마 전 어머님이 유튜브로 36살에 죽은 남자 이야기를 하셨다. 

수녀가 되려던 여자에게 삭발하고 찾아가서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매달렸고 

남자의 진심이 와닿았던 걸까. 여자는 수녀의 길을 포기하고 남자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어 결혼에 성공했다. 그렇게 2살, 5살 딸을 두고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남자가 대장암으로 선고를 받고, 집까지 팔아서 전셋집으로 옮겨가며 남편의 병원비를 댔지만 남편의 대장암이 재발해서 결국 죽게 되는, 남편의 신청으로 죽기 전 60일의 시간을 휴먼다큐 영상으로 기록했고, 어머님은 그 영상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남자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저라면 너무 꼴 보기 싫었을 것 같아요. 그냥 잘 살게 놔두지. 뭐가 예쁘다고 기록으로까지 남겨서 남은 사람들을 힘들게 해요?"

"왜에 ~ 사랑하니깐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거지. 뭐가 싫어. 그립겠지"


여자분의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그녀의 마음은 알지 못하겠다. 

그리고 내가 아픈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암은 죽을병은 아니기에,

더욱이 그 여자의 마음을 모르겠다. 


우리 시아버님은 간암 말기에 병원에 실려가셨고, 그로부터 3개월 뒤에 돌아가셨다. 

그 3개월의 시간 동안 어머님은 정말 힘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여자 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정말 힘들었다'라고 회고하셨다. 


그리고, 어머님은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아직도 그리워하신다. 

가끔씩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아버님이 다녀가셨다고 하실 정도로,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하실 정도로, 

그렇게 똑똑하고 생각이 트이고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하실 정도로.......



어머님을 보며 당장에 무책임하게 가버리는 배우자가 원망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하는 마음을 그리움이 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o.  남편에게 



내 병은 다행히 죽을병은 아니지만, 

'암'이라는 단어에 

나보다 나의 아픔을 더 슬퍼해주고, 걱정해주고, 마음으로 아파해줘서 고마워 오빠.

그렇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줘서 고마워.

오빠의 마음을 생각하니 이 저녁에 내 마음 한편도 뭉클하고 따뜻해진다. 

우리 서로에게 더 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지 말고

가지지 못한 조건을 이루기 위해 살지 말고, 

지금의 행복을 선택하며 살자. 






작가의 이전글 네가 열심히 일하는 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모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