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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출근길 성장 에세이 Dec 27. 2021

성정이란…… 성상 조각가 최종태 인터뷰

생각해보면 성상만큼 조각하기 어려운게 없을 것 같다. 보는이로 하여금 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신을 만나게 하는 그런 작품.

품위있고 결코 무겁지 않되 인자함을 머금고 성스러움을 자아내야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성상이다.

이런 성상을 조각하는 조각가는 어떤 마음일까?


기사만 읽어도 성모상을 보듯 마음에 성정이 일는 듯 하다.



다음은 인터뷰에서 인상적이었던 문장

–인체 조각 중에서도 특히 여인상을 많이 빚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걸 사람들이 자꾸 물어본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매일 같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데, 결과는 늘 소녀상이었다. 어떨 때는 성모상이 되고 관세음보살상이 되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있다. 괴테가 ‘파우스트’ 마지막에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높은 데로 이끌어간다’고 한 대목이 있다. 나 역시 이를 은연중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왜 여성적인 것이어야 할까.


“여성적인 것은 폭력적인 것이 아니다. 전쟁과 폭력이 아닌 배려와 수용, 어머니의 사랑과 인내 이런 것이 여성적인 것과 가깝다. 그런 단어들이 상징하는 세계를 늘 추구하고자 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높은 대로 이끌어갔다’


–선생님 조각을 보는 이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나.


“쉰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학교에는 매일같이 최루탄이 터졌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종교적 체험을 했다. 찰나의 순간 갑자기 내게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빛이 쏟아졌다. 사랑과 기쁨 덩어리가 모세혈관을 타고 온몸에 흐르는 듯했다. 지금까지도 이 순간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다. 내 작품에 이 기쁨과 사랑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길 바란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젊은 시절부터 내가 품은 세 가지 큰 의문이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구순이 돼 내린 결론은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건 결국 ‘인생이 무엇인가’와 같은 말이며, ‘진리란 무엇인가’와도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한 정답은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예술이 무엇인지 많이 따져 놓았지만 그건 답이 아니다. ‘모른다는 것’ 하나만 알겠다.”


–21세기에 이렇게 전염병이 창궐하리라고는 예상 못 했을 것 같다.


“난국이지만 온 국민이 합심해 타개해 나가리라 믿는다. 3·1운동은 경술국치 10년 만에 전 국민이 일어선 일이다. 세계 역사에 이런 일이 드물다. 4·19혁명은 불의에 온 국민이 항거했다. 이번 코로나 위기도 결국은 잘 이겨낼 것이다. 우리 국민은 근본 성품이 착한 사람들이다. 일본이 우리를 그렇게 침략했지만, 우리가 일본에 쳐들어간 적은 없다. 우리 예술에도 그게 잘 나타난다. 반가사유상, 석굴암을 보면 너무나 착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류 조각사에 아름다운 건 많지만, 저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본 적이 없다.”


–25일은 예수가 세상에 온 날이다. 선생님이 평생 지고 오신 십자가는 뭘까.


“프랑스에서 1차 대전이 끝났을 때 조루주 루오라는 화가가 동시대 유행하는 화풍 대신 노숙자, 외톨이, 매춘부 등 도시 뒷골목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처음엔 누구도 루오를 주목하지 않았고, 돈이 없어 판화도 제작하지 못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서야 프랑스 사람들이 진짜 예술은 루오가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도 세계에서 가장 참혹하다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당시 모두가 추상 미술로 갔지만, 전쟁을 겪고 나니 삶의 현장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물로, 인체 조각으로 왔다. 요즘 미술계가 옛날과 확연히 다른 점은 예술이 아름다움만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림이 사람 사는 이야기와 별개가 되었다. 그러나 예술가가 세상이 아플 때 ‘나는 상관없다’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것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십자가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6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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