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버엔딩 Jul 21. 2024

오매불망 어버이날

어버이날이다. 아들과 손주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잘 하지도 못하는 요리 솜씨를 발휘해 이것저것 음식도 해 놓았다. 벌써 여러번 오겠다는 약속을 안 지킨 터라 오늘 만큼은 반드시 오리라 생각했다. 카톡이 울렸다. 


“진호(15개월된 손주) 두 번 토함. 못 감.” 


67세 정희씨는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분개한다. 아들이 어릴 때에도 사이가 그 다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들이 학생일 때에는 반항이라 여기며 크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이제 아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으니 어른이 되어 철이 들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나아질 것이라 여겼는데, 갈수록 태산이다. 이게 무슨 되먹지 못한 행 동인지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 그 후로 한참 지났건만 아들은 전화도 하지 않는다. 정희씨 도 자존심이 상해서 자신이 먼저 전화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반면 아들인 용준씨는 가지 못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혔으므로 불편하 지 않다. 전화든 카톡이든 내용을 전달했으니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엄마가 화가 나 있을 것 이라는 예측은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엄마의 일이고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 엄마는 원래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고 용준씨가 어렸을 때에도 용준씨의 마음을 헤아려준 적이 없었 다. 엄마로부터 육아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어서 엄마에게 부채감도 없다. 


MZ세대는 이별도 문자로 하는 세대이다. 이별 자체가 이슈이지 이별을 대면으로 하지 않고 문자로 통보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는 세대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정희씨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즈음 기업에서는 MZ세대의 퇴사가 큰 이슈이다. 이들의 퇴사를 막기 위해 ‘리버스 멘토링’ 으로 MZ세대 직원과 경영진 간의 소통을 강화한다. 즉 계급장 떼고 대표가 혹은 임원이 MZ 세대 신입에게 배우면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월급을 주는 기업에서도 이러할 진대 가정에서도 비슷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부모와 자녀세대가 다름을 인정하고 부모 자 신의 기준을 들이대기 보다는 성인이 된 자녀를 어른으로 인정하고 대우해 주어야 한다. 객관 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인 정희씨는 억울하다. 공부를 잘했지만 가난한 집의 맏이로 태어나 동 생들을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은행에 취직 하여 동생들을 서울로 불러 공부시켰다. 결혼 후에도 구두쇠 소리를 들어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 것이 다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도 인정을 못 받고 이런 푸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느라 그 흔한 취미생활 하나 제 대로 한 것이 없다. 백세시대라 남은 여생도 짧지 않은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젊어서 고생했으니 늙어서는 몸도 마음도 편하게 누리면서 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몸이 늙 어 말을 안 듣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자식들이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저렇게 얼굴 한번 보 여주는 것도 유세를 떠니 이 억울함을 어찌할까.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자식이니 창피해서 어 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란다. 다른 집들도 결혼한 아들 며느리들의 행태가 우리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것이 위안이 될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자식이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부모로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다정한 엄마는 아 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들이 저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참으면 복이 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