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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Oct 16. 2015

당신의 인터뷰 #5 이동현

그 남자의 삶


삶이라는 게 참 다양하다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특히 성과와 목표 지향으로 힘껏 달려온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선택 이래 봤자 다수가 걷는 정도를 벗어나다, 아니다로 통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삶을 낳았다. 이제 와 그 삶이 희생, 또는 근면성실이라는 말로 그저 위로 또는 칭송받고 말 수 없는 것은 당시로부터 살아온 것은 개인이라기보다 하나로 묶인 사회였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한 쪽이 옳다는 식의 논쟁은 여전히 한 번 시작하면 끝나지 않을 일이다. 다만 우리는 그러한 끈기와 우직함으로 오늘 이만큼 살게 됐음은 부정해선 안된다. 개별적인 행복을 발굴하는 데 익숙지 않았던 때에서 오늘에 이른 데는, 시대와 사고방식의 변화도 한몫했을 것이나, 분명 우리는 부모 세대 덕분에라도 지금 그나마 선택다운 선택 앞에 서있다고 볼 수있다. 적어도 오늘이라는 시대는 각자의 삶을 위해 괴롭게 고민할 기회 정도는 부여한다. 주관적 가치에 따라 제 인생의 역할과 성취를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다. 비록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이분법적 틀에서는 벗어난 다양성이 열려있다. 허나 아직 기억해야 할 것은 개별적인 선택 역시 OX로 이루어진다는 점. 수 갈래의 길이라도 결국 가지 않지 않은 길과 걸어온 길, 두 종류로 나누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삶의 소용돌이는 끝도 없이 변형되는 바람에, 한 번 지나고 나면 다시 그 지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의 인생에도 중대한 선택의 지점이 찾아왔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겨우 30대 초반을 넘겼을 뿐인 나이를 밝히면, 해봤자 취업과 결혼 아니겠느냐 추측할 것인데 안타깝게도 일각의 긴장감 따위 없이, 그게 맞다. 그는 대기업에 취직했고 몇 해 지나 결혼에 이어 귀여운 딸도 낳았다. 비뚤어질 것 없는 탄탄대로라 평범해 보이는 그의 삶에 무슨 별난 이야기가 있겠나 싶기도 할 테지만, 오늘 이 인터뷰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평범하고 의례적인 선택, 그 행로에 스스로가 지키는 소신에 대해서, 그리고 이 남자의 삶에 대해서도 기꺼이 궁금해야 할 필요. 그 남자의 삶 by 이동현





    동현, 33세, S 전자 5년 차 선임. 결혼 3년 차, 갓 세 살이 된 딸이 있다. 대게 개인은 이같은 프로필로 보여지곤 한다. 이는 그가 ‘보통’의 속도에 맞춰 살고 있는지, 얼마나 이루었는지를 알게 해준다.필자는 조금 다른 면이 궁금했다. 부모와 남편, 가장으로 살아가는 그 안에 살아있는 개인에게 누구에게나 있을 위태로움을 묻고 싶었고 오늘에-저 프로필에- 오기까지 그의 앞에 놓였던 선택들과 그렇게 정한 선로 위에 있는 소감, 끝없는 고민으로 가득 찬 이동현의 삶을 듣고 싶었다.



*최근 본인의 삶에 중심이 되는 주제로 단번에 딸 하린이를 꼽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크게 말하면 아내를 포함한 가족 자체가 될 것이고, 아무래도 지금은 아직 어린 딸의 육아가 모든 일에 우선이 된다. 하린이가 태어나는 시점 전후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것에 딸을 고려해 선택하게 되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하린이가 태어나기 전후 달라진 선택에 예를 들어보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밤 중에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질 때는 즉시 심야영화를 보러 나갈 수 있었다.지금은 바로 이어 ‘하린이는 어떡하지?’하는 질문이 아내와 나 모두에게 떠오른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일보다 아이의 기분이나 상태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또,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지는 것 같다.

*부모가 되면 작은 것부터 큰 범위에까지 포기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맞다. 저렇게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크게는 자아실현 차원의 문제까지. 그건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육아와 맞서는 모든 일엔 타협점이 없다고 보면 되는가?

-적어도 지금은 거의 그렇다. 하린이가 많이 어리기 때문에 꼭 지금 해줘야 하는 것, 이때가 아니면 영영 해줄 수 없는 것들도 많다. 2015년 9월은 아이의 삶에 있어 다시는 오지 않는 시기가 아닌가. 언젠가는 아무리 옆에 있어주고 싶어도 그럴 필요가 없는 순간 역시 올 것이다. 그 후에 각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도 될 거로 생각한다.

*이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육아관인지.

-사실 예전에 가졌던 육아관은 막연했다. 그럼에도 결혼 전부터 아내와 나눴던 서로의 육아관이 잘 맞았다.어릴 때 특히 외롭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해주는 것. 최종적으로는 하린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고 비교할 수 없이 확고했다. 그는 포기하는 것들을 말하면서 그다지 서운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한 후이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아마 그것은 포기인 동시에 선택이기 때문이지 싶었다. 자녀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부모의 역할을 먼저 선택했고 그는 오늘 그 길 위에 있는 것이었다. 여느 아빠들처럼 이제 말썽꾸러기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딸을 오매불망 그리며 퇴근하는 딸바보로서 전에 없던 행복을 만나고 있었다. 웬만해선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애처가인 덕에 모임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얼굴이지만, 가끔 만나면 자라는 딸의 근황을 빼놓지 않는 것도 아빠가 된 그를 충분히 증명한다. 다만, 이제 신혼의 달콤함을 물을 시기도, 득녀의 축하를 받을 시기도 지나고 이제는 그에게는 선택한 삶의 고독한 직선 대로가 시작되고 있었다. 담담하게 육아의 어려움과 행복을 번갈아 말하는 그를 보면서 결국 포기의 문제는 서글프게 머리 싸맬 것이 아니라, 가고 가지 않은 길의 문제인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본디 선택에 책임이 뒤따른다는 말이 나온 까닭은 누구나 선택을 할지언정 마법처럼 온전히 새사람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 아니겠나. 선택으로부터 오는 행복의 이면에 존재하는 책임이란 이름의 갈등은 필수불가결. 가족이란 이름 안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앞서 말하기를 하린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난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괜찮을 거라고, 또그때면 조금 늦긴 할 거라고도 했는데. 

-그렇다. 체력적으로도 그때면, 마흔이 넘어가니 심신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 그렇지만, 지금은 최대한 하린이의 성장에 집중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40대가 완전히 늦은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기에 늦어진다는 건지?

-자아실현에서는 늦지 않겠나. 현실적으로 지금 원하는 것을 그때 새로 시작하려면 늦을 것 같다.

*그 꿈에 대해서 듣고 싶다. -일단 공부를 더 한 후에 일하는 분야에서 좀 더 전문적인 직무를 맡고 싶다. 전문 지식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박사까지야 무리가 있겠지만…….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아내와도 상의하고 있다. 이미 스스로 틈틈이 공부하려고 시작한 상태이기는 한데, 현재로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진전이 잘 안 된다.

*그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겠다. -물론 내적 갈등이 있다. 공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퇴근 후 시간은 가족과 보내야 할 의무, 보내고 싶은 욕구도 있기에.

*그래도 꽤 현실적인 꿈을 가진 것 같다. 왜 예전에는 정말 꿈에 그칠 것 같은 꿈을 말할 때도 있지 않았나.

-맞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나만의 카페를 차리는 일. 그것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그 꿈은 조금 더 시간이 걸려도 된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노년에도 할 수 있지 않겠나.

 


거기까지 듣고 나니, 그의 삶이 전보다 조금 명확해졌다고 느낀다. 말 그대로 저 높은 곳에나 있을 법한 이상적인 꿈과 현실 사이에 하나의 계단이 더 생긴 것이었다. 가정을 더 잘 꾸려가고 싶은 그가 가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 결국, 그는 대부분 포기하고 사는가 싶더니, 새로이 꿈꾸고 있다.



* 후생에 한 번 더 본인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금처럼 결혼과 아이 모두 선택할 것인가? 

-결혼....(3초) 할 것 같다. 물론 아이도 낳고.

* 이유는? 

-물론 독신의 생활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결혼하기 전에 즐겼던 삶 역시 그때는 또 그 나름대로 좋았다. 하지만 개인으로 모임에 가고,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고, 매진하는 일을 나는 ‘즐거움’이라고 여긴다. 반면에,결혼 후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기쁨이야말로 비로소 ‘행복’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결혼한 후엔 전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고 어려움에 직면하는 때도 잦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행복이 됐을까? 요즘은 많은 이가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곤 하는데. 

-앞서 말했듯 혼자일 때는 편하다. 더 많은 것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전에 없던 삶의 추진력이 생긴달까? 가족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된 다. 또, 아내와 함께 웃는 아이의 얼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새로운 행복을 알아간다. 물론, 다음 생에 결혼은 아주 조-금만 더 늦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웃음)

* 사실 또래 남성보다 좀 이르기도 했다.

 -그렇다. 하지만 늦게 할 거라고 해봤자, 1년 정도? 우리 부부는 신혼이 짧았던 터라 약간 아쉽지만, 그만큼 하린이를 빨리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결혼 도 마찬가지, 늦게 하면 자유를 더 누릴 수 있는 동시에, 그만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이 정도면 그를 모른 채 이 글을 읽던 이들도 그가 참으로 가정적인 남자라는 생각을 할 성싶다. 덧붙이자면, 그는 지난해 딸 돌잔치에선 손수 찍고 편집한 영상으로 한껏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아내를 향해 세레나데를 부른 결혼식 영상은 또 어땠고. 지인들은 아직도 그날 식장의 낯뜨거운 분위기를 떠올리곤 하지만, 그만큼 그가 섬세하며 조용히 열정적인 사람임은 명실상부 더 말할 것이 없다.적어도 지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개인의 이동현이 뚜렷이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제 그 모습으로 개인이 될 것인지도 몰랐다. 잘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는 이미 결혼과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삶이 완전히 바뀐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 일은 어떤가. 입사 5년 차, 조금 편해지나.

-딱히 그렇지는 않다. 큰 회사이다 보니, 업무는 한결같다. 누구나 그렇듯 회사 속의 개인은 힘들 때가 많다.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으면 난데없이 허무해지기도 하고 성과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기도 하니까.

*한국의 직장인으로 사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가장이니, 경제적 보상과 시간적 여유를 맞바꾸는 조건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다. 씀씀이를 좀 줄이더라도 더 여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것 중에 포기할 만한 게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다고 본다. 가끔 귀농하는 것도 평화로운 삶이겠다고 상상하곤 한다.

*조금 의외다. 지금 이루어 사는 것들을 어느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이. 원래 욕심이 없는 편인가.

-크게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다. 물론 삶 속에서 기본적인 욕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거기에 매달리진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적잖이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맞는 것 같다. 여지껏 큰 결핍 없이 살아온 탓이지 싶다. 가끔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느낀다.

*하지만 삶 속에서 지속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게 좋아 보인다. 어쨌든 본인이 원하는 행복의 모습과 그것을 위해 포기하고 지켜야 할 것이 뭔지를 알고 있지 않나. 

-그렇다. 행복은 마음먹기 마련이니까.

*오늘, 당신은 행복한가. -행복하다. 힘든 것을 말하면 끝도 없다. 마음에 달렸다.

* 앞으로는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게 될까? 지금보다 덜 힘들어지길 바라나. 

-앞으로 더 힘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충분히 이겨나가는 힘이 생기기를 바란다. 가족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는 삶.

*그 미래 역시 행복한 삶일까.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는 솔직히 행복이라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헤쳐나가며 안도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행복한 삶 이상의 단어가 필요할 것 같다……. 아마도 


“사랑하는 삶”



앞서 쓴 그의 프로필이 떠오른다. 길지 않은 삶이지만, 향기조차 없는 한 줄로 요약되기엔 아까운 사람. 진심을 다해 선택하며, 걸어갈 길 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힘든 일을 말하면 끝도 없다는 말이 내포하듯 그는 분명 힘들 것이지만, 소신을 힘껏 붙잡고 걷는다. 그 역시 부모의 길에 서니 희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이름 아래 선택보다 더 많이 포기하고 살았던 우리 부모와 그 부모 세대도 떠오른다. 행여 선택의 여지가 없대도 누구나 두 갈래 길 앞에서는 고민하게 된다. 미련 역시 마찬가지. 선택하지 못한 만큼 후회도 커질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의 삶은 끈덕지게 그래왔고 또 그럴 것이다. 오늘의 아버지인 이동현도 가고 싶은 길과 가야 할 길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지만, 무턱대고 부모의 이름으로 휩쓸릴 필요는 없어 다행이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유효하다. 이는 앞으로 맡게 될 어떤 역할에도 마찬가지일 것. 모두가 그를 그저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또는 직장인이라고 무심히 부른대도 그만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노후에는 망설임 없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겠다 장담하는 그는 언제 까지나 사랑하는 삶 안에서 굳건히 이동현일 터다. 더불어, 사회 속에서 자신의 향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개인에게도 일일이 응원을 보낸다. ■ (OCT, 2015)


인터뷰, 글/ 황은비(olocbo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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