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넘기며
추위에도 새들은 물가에 모였다. 가끔 창밖을 볼 정신이 들 때마다 모여있는 새들을 구경했다. 얼어붙은 어느날은 모두 사라졌다가도 어느날은 다시 돌아와 있었다. 물 위에 햇살이 자그마하게 내리쬐는 섬 하나가 그들의 자리였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처음엔 멈춘 듯 보였던 새들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제각각 분주하게 움직이는 행동들도 분간이 된다. 까마귀와 오리, 비둘기, 참새나 까치들... 그중 물오리가 가장 많아 보였는데 정확히 구분되지는 않지만 같은 종끼리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녔다. 짝지어 먹이를 찾거나, 새끼들을 인솔하며 물 위를 떠다니는 녀석들이 있고, 무리에 섞여 뭔가를 끊임없이 쪼아먹기도 하고, 제 몸을 다듬느라 바쁜 개체들도 보였다.
이러한 내 시선은 따뜻한 배경에 희석된 액자 속 풍경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저들의 피부에 닿는 한기와 배고픔, 살아남기 위한 분투로부터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내가 편할 대로 하면 되는 한 폭의 그림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멈춘 듯 살아 있는 듯 창밖을 보고 있으면 그 곁에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모두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곤 한다. 예를 들어, 나의 감정은 얕고 작은 파도 같아서 다른 사람들은 잘 눈치채지 못한다. 홀로 망망대해의 종이배처럼 뒤집히고 돌아오길 반복할 뿐이다. 한때는 이런 면을 불행이라 여겼지만, 시간은 가르쳐주었다. 탄성의 힘으로 다시 괜찮아진다는 것과 더불어, 안정과 불안정의 순환도 세상사의 행불행처럼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믿음을. 다만,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 삶이 쉬워지지 않은 것은 이 같은 불안을 덜어낸 자리에 또 그만큼의 희망과 바람을 채우기 때문이지 싶다. 결국 다시 고통하는 일이어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우리에겐 저마다 살아있기에 부여받은 과제가 있고, 눈을 떠 잠을 청하기 까지 나를 지탱하는 땅과 그 무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세상은 말도 안 되게 뒤집어지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 최소한 숨 쉬는 존재로서 증명해 나가며 사는 것. 무사히 달력을 넘길 때마다 다짐하는 시작 그리고, 다시 시작. 오로지 그것이다.
내일, 변함없이 회색 공기 속을 달리는 무리에 섞여 지하철을 타고, 약속된 시간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그것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하다는 애정을 안고 우리를 대하고 싶다. 또, 가끔은 본능에 내맡겨버리고 싶은 것들을 차선으로 밀어두는 성숙함을 발휘하고, 나아가서는 스스로 욕망과 희망을 분간할 줄 아는 어른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울러 잠잠할 리 없는 가슴을 안고 묵묵히 물가에 모이는 저 새들도 변함없이 내게 위로가 될 것이다. 평온하게 바라보기를 멈추지 않고, 또 그 일을 그들에게 빚진다 여기지도 않으려고 한다. 나도 저들의 하루에 머무는 풍경일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의 평온한 곁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