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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Aug 30. 2020

이번 생에는 안 될 것 같아!

폴더폰 쓰는 엄마, 인스타 초보 딸


“이번 생에는 안 될 것 같아!”     


엄마가 갑자기 소리쳤다. 순간 엄마가 최근에 만났을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주르륵 스쳐지나갔다. 가족이랑 이모들이 전부였던 것 같은데. 아빠는 물론이고 이모들도 이런 말을 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티비에서 이런 말이 나왔던가? 엄마가 보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나도 보는데, 최근에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책일까? 하지만 책에서도 그런 문장은 못 본 것 같은데?


이게 바로 부모의 마음인가보다. 나랑 나눈 적 없는, 출처모를 유행어가 엄마 입에서 튀어나오자 어리둥절했던 것처럼 ‘우리 애가 혹시나 이상한 말을 배워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거겠지. 친구랑은 ‘이번 생에는 힘들 듯’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았는데, 그걸 엄마가 말하는 순간 왜 그리도 어색하고 이상했을까. 엄마,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들은 거야?     




앞뒤 사정은 이렇다. 취미라곤 미드 보기, 책 읽기 정도가 고작이던 엄마에게 얼마 전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무려 퍼즐게임이다. 오빠가 쓰던 낡은 태블릿 피시에는 엄마를 위한 게임이 서너 개쯤 깔렸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에 라디오를 듣고, 스마트폰이 아니라 폴더폰을 쓰고, 공과금을 하나하나 은행 가서 내던 엄마에겐 엄청난 변화였다. 엄마는 세 자릿수에 육박하는 게임 스테이지를 차근차근 깨나가더니, 어려운 구간에 도달하자 언제부턴가 이 말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번 생에는 안 될 것 같아!


그동안 우리 가족 사이엔 엄마 몰래 모종의 대화가 있었다. 주로 엄마의 폴더폰을 둘러싼 실랑이였다. 오빠는 ‘일단 스마트폰 사드리자니까. 그럼 쓰시겠지.’하는 급진파고, 나는 ‘엄마가 싫다는 데 왜 자꾸 그래.’하는 나름의 온건파였다. 얼마 전 2G폰이 사라질 때는 큰이모가 전화도 했었다. ‘네 핸드폰은 괜찮니?’하고. 엄마의 핸드폰은 3G다. 아직 쓸 수 있는 핸드폰이고, 쓰고 있는 핸드폰이고, 세상에 많이 존재하는 물건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핸드폰은 매일 ‘없는 것’ 취급을 받는다. 마트와 백화점에서 광고문자가 와도 알아볼 도리가 없다. 첨부된 이미지들은 전부 깨지고 링크는 무용지물이다. 앱을 설치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 문구도 그림의 떡이다. 물건 하나를 살 때마다 직원분은 ‘앱 설치하고 회원가입 하시면 할인해드려요’하고 살갑게 말을 거시고, 엄마가 스마트폰이 없다 대답하면 다들 당황하고, 순간 정적이 흐르다가, 서로 머쓱해하며 가게를 빠져나오고……     




스마트폰 없는 엄마와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 그 사이에 낀 나는 엄마의 퍼스널 쇼퍼가 되었다. 답답하거나 귀찮았던 적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가끔 귀찮았다는 말도 거짓말 같다. 사실은 자주 귀찮았다. ‘그럴 거면 엄마가 사든가!’하는 말을 몇 번이나 했더라?


엄마의 불편함은 내게 한몸 같았지만 동시에 남일이기도 했다. 나는 얼리어답터도, 인플루언서도 아니지만 일단 20대였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다른 전자기기나 SNS도 당장 필요하지 않아서 안 쓰는 거지, 필요하다면 언제든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게도 장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네의 작은 가게는 물론이고 티비에 나온 예쁜 카페며 식당은 거의 전부 인스타그램을 쓰고 있었다. 다른 SNS를 병행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인스타그램만 사용하는 가게도 굉장히 많았다.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오늘의 메뉴며 이벤트, 공지사항, 하다못해 오늘 당장 문을 여는지 안 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새로 생긴 동네 빵집에 장렬하게 패배해 인스타그램을 설치하고야 말았다. 바야흐로 올해 여름의 일이었다.


인스타그램은 매번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아주 굉장했다. 이렇게 불편한 걸 다들 이렇게까지 열심히 쓰고 있단 말이야? 텍스트를 입력하는 칸은 왜 이렇게 작고 가독성이 구리지? 컴퓨터 환경에서는 포스팅을 할 수가 없다고? 게다가 줄도 맘대로 못 바꿔? 링크도 못 달고? 다들 왜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열광하는 거야?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를 인스타그램의 세계로 이끌었던 동네 빵집도 코로나로 몇 주째 휴무중이니, 내 계정은 오갈 데 없이 붕 뜬 상태다. 그래도 쓰임새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서평단에 지원해 책을 몇 권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인스타그램은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만큼 정보도 많았고, 기회도 많았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자상품권과 앱카드, IoT처럼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들은 모조리 스마트폰에 집중되어있다. 스마트폰을 쓴다면 엄마의 삶은 분명 편리해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편리와 편함은 다른 문제다. 엄마는 불편한 기술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불편을 겪고 싶지 않은 거다. 내 번호를 상대방이 갖고 있단 이유만으로 ‘친구’라는 안이한 이름으로 묶어버리는 메신저, 제품을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하고 싶으면 자사 사이트에 가입하라는 수십수백 개의 홈페이지와 앱들, 공인인증서 없이는 나를 나라고 인정해주지도 않는 은행과 정부 사이트……


기존에 존재했던 서비스가 앱으로 옮겨가며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거나, 생활에 필수적인 기능인데도 배제되는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서비스를 다른 방식으로 제공받는 게 아니라 아예 이용조차 불가능해진다. 세상이 ‘내 손 안의 편리함’을 외치는 동안 우리 엄마의 세상은 점점 더 작아지고만 있었다.     




태블릿 게임은 엄마를 분명 터치스크린 친화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돌연 계산원들이 없어진 날, 우왕좌왕하던 엄마는 이제 내게 셀프계산대 이용 방법을 알려준다. 얼마 전에는 엄마에게 블루투스 연결 방법도 알려드렸다. 우리 집 라디오는 지금 안테나가 아니라 태블릿 앱과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엄마가 뿌듯한 얼굴로 ‘해냈다’며 자랑할 때면 내 마음도 덩달아 신이 난다. 엄마가 즐겁게 게임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그 기쁨은 아마도 엄마가 정말로 게임을 궁금해 했고 하고 싶어 했기에 나온 결과라 믿는다. 그리고 엄마가 언제나 그런 이유들로 새로운 기술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이 갖고 싶어서 스마트폰을 산다면 모를까, 사람들의 시선과 가족의 재촉에 등 떠밀려서 마지못해 손에 쥐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생에는 안 될 것 같아’라며 스마트폰 서비스의 장벽 앞에 낙담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난 싫은 건 죽어도 싫은 사람이라 우리 엄마 속을 조금은 썩였다. 엄마가 기쁠 일만 할 자신은 없으니, 적어도 우리 엄마도 싫은 일은 조금은 덜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내가 엄마의 퍼스널 쇼퍼냐며 툴툴대면서도 쇼핑앱을 켜고, 부지런히 구청 사이트에 드나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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