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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Nov 14. 2021

투쟁과 증오의 전설을
희망과 연대의 이야기로 얽어내다

'새소녀', 벨마 윌리스, 서평단

작가 벨마 윌리스는 알래스카 원주민 중 하나인 그위친족 출신이다. 그위친족의 문화와 관습 속에서 성장한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께 들었던 전설들을 새롭게 엮고 창작하여 <새소녀>를 만들어냈다. 전설 속에는 알래스카에 거주하는 원주민 부족들이 갈등하며 비극을 빚어내거나, 서로 도와가며 위기를 극복해내기도 했던 삶의 방식이 녹아있다. 벨마 윌리스는 그위친족과 치콰이(이누피아크)족이 서로를 적대했던 이유인, 상반되는 전설을 투박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는 누가 옳고 그르다며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그위친족 작가의 의도는 책의 머리말에 실린 치콰이족 지도자의 글로 말미암아 완벽한 형태로 완성된다. 


치콰이족 지도자인 이레이구르크는 이 이야기가 처음에는 “불편하고 난처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위친족이 치콰이족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을 전설로 습득했듯, 치콰이족의 전설 속에서도 그위친족은 의심스럽고 못미더운 존재였다. 그러나 이레이구르크는 그위친족과 치콰이족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비슷하며, 옛 조상들이 연대해 영토를 지켜냈듯 <새소녀> 또한 현대 원주민들이 당착한 문제인 원주민 정신과 언어, 정체성 등에 연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가져다주었다며 그위친족 작가의 글을 기꺼이 환대한다.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 작가에 의해 새롭게 창작되고, 재창작된 이야기는 고유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오늘날 전설 속 후손들이, 세상 사람들이 당착해있는 문제에 희망과 활력을 부여한다.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선순환을 단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역자는 “투박한 표현과 거친 전개 이면에 자리 잡은 단단한 사실적 핍진성”이라는 말로 이 책을 표현했다. 전설이 으레 그렇듯, 이야기는 세련되기보다는 강렬하고 투박하며 때때로 현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도덕과 윤리를 넘나든다. 새소녀 주툰바가 치콰이족 투라크에게 납치되어 부당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 적대 부족의 시신을 서슴없이 모욕하고 유린하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작가는 ‘지은이의 말’을 통해 “가장 걱정했던 것은 폭력에 관한 부분”이라며, 그 또한 이런 자면들을 써내려가며 고심했음을 서슴없이 토로한다. 그러나 작가는 결국 “주툰바의 동기를, 그리고 그녀를 억류했던 자들의 동기를 납득할 만하게 만들”기 위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버전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장면을 읽으며 때때로 마음이 불편했지만, '지은이의 말'을 통해 작가의 고민과 불안을 엿보게 되니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는 올바르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투박하고 거친 장면들이 알래스카 원주민의 전통적인 삶과 전설을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에 강렬한 에너지를 부여했음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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