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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Sep 10. 2022

태풍이 지나가고

섞은 것은 떨어져 나가는 계절 


힌남노가 남기고 간 것들 



힌남노가 제주도를 지나갔다. 

밤새 바다는 울었고 파도는 만조와 함께 해변을  집어삼켰다. 야자수들이 휘청이고 , 나뭇잎들 열매들이 떨어져 나갔다.  아침 무지개와 함께 힌남노는 떠나갔다. 아침일찍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삼삼오오 다들 나와 텃밭을 정리한다. 가지들과 고추 귤 들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대견하게도 살아남아준 열매들 , 그리고 대롱대롱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슬아슬한 열매들이 여기저기 매달려있다.  자연스러운 가지치기가 되고 , 섞은 것들은 다 날아가버렸다. 

여름의 끝에 찾아온 태풍은 mother nature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여기 대롱대롱 달려있는 야채들을 모두 쓸어 담아 싹쓸이 토마토 스튜를 해 먹었다.


재료:  토마토 많이, 양파 , 감자 , 가지 , 두부 , 버섯  당근 etc 

  (여기 토마토/양파/ 가 포인트고 다른 야채들은 첨가해도 대고 안 해도 된다 )  


1. 오븐을 달궈놓는다

2. 달 구는 동안 양파 1개 토마토  있는 대로 다!  가을 토마토는 물러져 물컹한 상태라 손으로 듬성듬성 으깨주었다.  ( 토마토 물이 포인트!   )

3. 가지 감자 가지 등을 넣어주고 이번엔 두부를 치즈처럼 올려주었다  (버섯 없어서 패스 ) 

4. 소금 후추 올리브유를 듬뿍 넣고 180도로 20분 정도 열을 가해주면 끝! 

야채를 마구마구 으깨서 넣고 올리브유 소금 후추 촥촥!

 

밥에 올려서 먹어도 맛있고, 빵에 찍어 먹어도 맛있는 야채 스튜 완성!  

자연스럽게 야채 물이 흘러나와 간이 적절하게 배어 있다. 이제 막 땅을 떨어지려고 한 녀석들이라 그런지 더 향긋하고 향이 깊다!  오 마더 네이처! 


상해에서 프리랜서 모델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을 하던 시절, 룸메이트  영국친구가 가끔 해주던 요리인데, 감기가 걸리거나 아플 때마다 해주던 , 야채스튜다! 상해에서 친구와 자전거 트립을 가던 중 비가 쏟아져 오도 가도 못하고 한 시간을 달려온 숲에서  몇 시간을 떨어야 했던 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감기에 걸려버렸다.  

밴쿠버에서 2년 만나던 친구와 헤어지고 2년을 침대에 누워 오늘내일하며 베갯잇이 마를 날이 없던 시절. 

어떻게 서든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으로  밴쿠버의 안정적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상해로와 젊지 않은 나이에 다시 프리랜서 모델일을 하며 디렉터로 자리잡기 위해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경계하던 그때,

 비가 내리던 그날 , 비와 함께  남아있던 마음의 고름까지  씻겨 내려갔고, 그 친구가 만들어준 야채 스튜를 먹고 감기 때문인지 해방감 때문인지 ,  해방감에서 오는 헛헛함 때문인지 속절없이 기쁘던  그 순간 , 

얼굴이 발개져 소파에 잠든 룸메이트 친구의 볼에 살포시  뽀뽀를 한 기억이 있다. 

이 야채 스튜는 회복을 상징한다. 섞은 마음들 상처받은 마음이 떠나가고 , 감기를 회복하게 해주는 야채스튜. 생각해보니 태풍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야채스튜는 몸을 회복시켜줘서 좋지만, 마음이 알싸하기도 하다. 



태풍이와 떨어진 감

태풍 내내 나와 함께 해준 친구의 개 태풍이와 아침산책을 하며 같이 살아남은 것에 대한 행복감을 느꼈다.  위험을 함께 겪어낸  깊은 동지애! 



"섞은 것들이 자연스레 솎아지는 계절" 


서울에 두고 온 '섞은 관계' 들이 생각이 났다. 

생각만 해도 하품이 나도록 '지루한 관계들 '

 

사람의 위치로 계급화하던 천박하기만 하던 가진 자들.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말없이 이끌려 다니던 가난한 아티스트들.  좀 더 일찍 태풍의 비밀을 알았다면 시간을 덜 허비했을 텐데 


 속절없이 지나간 아름다워야 했던 20대 시절

  비교하자면 ,  30대 중후반이 되어  제주에서 강아지를 돌보며 텃밭을 가꾸는  평화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화자가 훨씬 마음에 든다.


"목숨 걸고 우아하게"


제주에서의 고립은 섞은 관계를 정리해주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이사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즘에 가까워지고 그리고 그것을 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  이젠 요가복과 수영복 솔트워터 슈즈 말곤 딱히 입을 것도 필요한 것도 없는 나날들. 필요한 건 다 제주의 자연에 있고 , 도시에선 필요했지만 시골에선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을 당근 마켓으로 정리했다.  오히려 도시에선 필요 없지만 시골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이웃에게 나눔 받는 따뜻한  '정'에 대해 생각하며, 삶의 아름다움이 이런 거 아닐까 했다.  







쓰러진 가지 나무를 일으켜주고 태풍으로 떨어져 간 섞은 고추들도 다 정리해주었다. 

태풍 세트로 준비해둔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태풍이와 까까나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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