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충호 Aug 18. 2017

영혼의 로맨스, 쾌락과 몰락을 거래하다

When I dream · Carol Kidd

삼백여 년 전에 출간된 한 권의 소네트 모음집이  갑자기 내 영혼의 로맨스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1854-1900)

 오스카 와일드의 마음을 천둥처럼 흔들고 번개처럼 내리쳤던 책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젊은 남자에게 바쳤던  우아한 노래를 듣는 순간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모든 의문을 내려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남자를 위한 남자의 노래가 받아들여졌던 16세기와 달리 19세 영국 사회는 동성애와 관련하여  오스카 와일드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한낮의 태양처럼 빛나던 오스카 와일드 서 넘 어둠에 갇히고 다시는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영혼의 로맨스와 마주합니다. 그 마음속의 천둥과 번개를 포착하고, 이해하고, 풀내는 데에 평생이 걸릴 수도 고, 훗날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자신에게 갑자기 찾아왔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기만 하다가 '아,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과 만나게 된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작년 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처음 읽게 되는데 그 후로도 삶의 중간중간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만 미묘한 형태로 머리 속에 자주 떠오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세계의 모든 도서관에 불이 날 경우 가장 먼저 뛰어들어가 구해야 할 책은 바이블, 셰익스피어, 플라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다.
ㅡ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2천 년 전 플루타르코스가 그리스와 로마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썼던 50명의 유명 인물들의 도덕적 가치와 실패는 소중한 삶의 지혜와 다름없었습니다. '나'라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국가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는 교과서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친구여,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자네와 나누면 좋겠는가?
왕이시여, 다 좋으나 나라의 비밀만은 나누지 말아 주십시오.

 데메트리오스(BC 336~283) 편에 나오는 이 대화는 뤼시마코스라는 왕이 필립피데스라는 친구와 나눴던 대화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무심히 읽고 지나쳤던 부분이었는데 국정농단 사태가 있고 나서야 이 예화를 떠올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왕과 개인이 국가의 비밀을 나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정의 요직에 앉아 있는 누구라도 이 오래된 예화를 읽어 보았더라면, 그 교훈을 마음에 새겼더라면 이 땅에 비극은 없었을 거라 생각했던, 그래서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던 결정적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회의사당 하원회의장에 있는 솔론의 돋을새김


어떤 도시가 가장 살기 좋은 도시입니까?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와 합심하여 가해자를 처벌하려고 노력하는 도시입니다.

 솔론의 대답만 놓고 보면 마치 한 개인의 선동적인 발언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솔론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 우리의 정치 시스템에서는 대통령이나 책임총리 같은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대답은 그 울림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법정이나 나라의 관료, 공공 의회 등이 부자들의 명령을 받고 그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한 솔론은 시민 모두에게 공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주고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고 말합니다.

 



 머리 속에만 머물던 2천 년 전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난해 10월 어느 날, 갑자기 내 영혼의 로맨스 인양 그 방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두 달만에 원고지 1500매 분량의 초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과 수많은 정치, 경제, 문화계의 내로라하는 권력들이 국민을 농락하고, 사적 이익을 챙기는 추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놓쳤던 오래된 지혜를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탈고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100여 군데의 출판사에 스팸메일 뿌리듯 투고하고는 한 달 정도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한 달 동안 여섯 군데의 출판사로부터 출간과 관련하여 연락을 받았습니다. 얼떨결에 썼던 원고가 시민의 품격, 국가의 품격의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입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은 편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나'는 둘입니다. 하나는  촘스키(Noam Chomsky)가 정의하는 범주에 들어있는 아나키스트(anarchist)입니다.


아나키즘은,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지배구조 혹은 권력구조를 파악하고 그 정당성을 물은 뒤, 정당하지 않다고 판명되면 그 구조를 넘어서려 노력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의 경향을 가리킨다.


  어느 한 곳에 마음의 집을 짓지 못하고 화전민처럼, 유목민처럼 새로운 길을 걷는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한 줄입니다. 늘 그렇듯, 영혼은 '먼 곳에 대한 대한 그리움'을 속삭이고, 육체는 '너의 현실을 직시하라'라고 말합니다. 자유를 꿈꾸는 욕망에서 시작된 마음의 갈등은 국가나 사회가 구축해 놓은 온갖 제도와 부딪치고 부딪히면서 살아갑니다.

 



 내 정체성의 다른 하나는 호모 비블리오쿠스(Homo Bibliocus)입니다. 책을 통해서 정체성을 규정하고자 하는 무리에 속한 '나'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나'이기도 합니다. 책을 쓰면서 내 안에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영혼의 로맨스에 관한 일입니다. 영혼의 그 무수한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습기를 머금은 그늘 쪽만 걷는 이에게 희미한 빛을 나누고, 무자비한 땡볕 아래서 비틀거리는 이에게 한 뼘 그림자를 건네는 '작은 노래'를 부르는 일입니다. 이제 그 길을 걸으며 나의 노래를 부르고자 합니다.


When I dream · Carol Kid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