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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호 Jun 15. 2020

헤밍웨이에서 뽑아낸 열정, 눈물, 사랑과 지혜의 샘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3 Ernest Hemingway

Prologue


헤밍웨이는 시작부터 끝까지 명성의 울짱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간단명료한 그의 문장처럼 그는 삶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간단명료하게 마침표를 찍으며 전설의 담벼락을 높였다. 이런 그의 명성과 전설은 주거니 받거니 끝임 없이 회자(膾炙)되고 그 열기는 지금도 식을 줄을 모른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우리 마음에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성긴 울타리 틈새로 거인의 정원을 엿보다가 그가 던진 미끼 하나를 덥석 물었던 적이 있다.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작가로 입문하기 전 초벌로 원고를 쓰는 내내 의심과 두려움, 캄캄한 공포와 마주할 때 의지했던 헤밍웨이의 말이다. 그렇다, 글도 우리의 삶도, 모든 일은 수십, 수백 번 고쳐 쓰는 일이다. 

사랑과 야망의 생로병사를 쫓아가는 게 인생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주름과 흰머리를 홀로 들여다보게 될 때 나오는 회한의 눈물이나 관조(觀照)의 힘이 아마 자신의 진가(眞價)일 것이다. 부디 헤밍웨이에서 뽑아낸 열정과 눈물, 지혜와 미학이 당신의 가슴으로 건너가 당신의 무늬를 만들고 당신의 영어를 적셔주는 청춘의 샘이 되었으면 한다.

그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인문 영어’ 문장들을 뽑아 ‘멋진 영어’ 시리즈를 이어가려고 한다. 그의 문체로 풀어낸 젊은 날의 사랑과 노년의 성찰은 마치 계절을 따라 익어간 과일처럼 고상한 뒷맛을 남긴다. 헤밍웨이 과일바구니에는 다섯 개를 담았다. 그의 명성이 시작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1926)』부터 『무기여 잘 있어라 A Farewell to Arms(1929)』,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1936)』,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1940)』 그리고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기여한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1952)』까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스물일곱 살의 헤밍웨이가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다.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후 정신적 불모지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가 겪는 시대적 불안과 상실감을 그렸다. 이전의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자리에 뿌리 내린 환멸과 상실감으로 인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 헤매야 했던 젊은 세대의 혼돈과 방황, 로맨스를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생생하고 풍부한 스타일로 담아낸 걸작이다. 

헤밍웨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무기여 잘 있어라』는 그 스스로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했을 만큼 불운한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비극 소설이다. 스스럼없이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 삶을 방치했던 남자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서 삶과 사랑의 소중함과 교감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린 연애소설인 동시에 이데올로기가 주는 공허함, 모닥불 위 통나무에 붙은 개미처럼 세상에 내던져져 죽음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그린 전쟁소설이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그가 쓴 70여 편에 달하는 단편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자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돈 많은 여자들을 유혹하며 일탈적인 삶을 살다가 평생 꿈이었던 글쓰기를 시작하며 아프리카에 갔다가 사소한 사고로 죽음 앞에 서게 된 남자의 마음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대면하게 된 고독과 공허,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절대 자유가 소설 첫머리에 올린 ‘무엇을 찾아 그 높은 곳까지 왔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제사(題詞)와 어우러지며 신비를 더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철교 폭파 비밀 지령을 받은 미국인 로버트 조던이 1937년 5월 말의 토요일 오후부터 그다음 주 화요일 오전까지 벌어진 투쟁을 그린 연대기 소설이자 전장 속에서 나즈막히 울려 퍼지는 희망의 종소리 같은 러브 스토리다. ‘당신 안에 내가 있다(The me in thee)’ 라는 조던의 말을 빌려 죽음을 삶으로 연결하는 동시에 존 던(John Donne)의 시에서 따온 소설의 제목을 통해 연대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가시나무새가 되어 부른 마지막 노래였다. 켈트 신화에 나오는 가시나무새는 평생 뾰족하고 긴 가시가 박힌 가시나무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찾은 그 가시나무로 돌진해 가시에 박혀 죽으면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했던 멕시코 만류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혼자 먼 바다로 나가 크고 힘센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이틀의 시간을 통해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겠다’는 한 인간의 실존적 투쟁과 불굴의 의지를 그려내고 있다.


제자에게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던 화요일의 모리 교수처럼(『Tuesdays With Morrie』) 토요일마다 내 영혼과 육체에 건강함을 불어넣어 주시는 이원상 선생님과, 집필에 필요한 헤밍웨이를 챙겨주며 응원해 준 친구 류재량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20년 6월

이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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