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여행이라는 정의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특정 목적지나 여정 없이 떠나는 여행,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들꽃과 아무런 소리도 없이 하늘을 무심히 가르고 지나가는 새를 이따금 보게 되는 시골이나 외딴 지역을 통과하기도 하고, 묵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도심을 지나는 도보 여행자를 닮았다고나 할까요. 그렇다 보니 계획에 없던 방황도 여행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그렇게 다다르게 된 낯선 장소를 탐험하는 경험의 집합체가 인생이다 싶습니다.
종일 고통스럽게 걷다 보면 자동차, 기차, 비행기를 떠올리며 순식간에 새로운 장소로 공간 이동을 하고, 새롭고 화려한 문화, 요리 및 관습을 경험하고픈 욕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롭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원하는 대로 쉬이 오갈 수 있는 여유도 없고, 그 욕망이 소용돌이를 끝내고 남긴 침잠물을 보면 이 세상의 여행자, 나그네, 순례자가 더 어울린다는 깨달음에 도달해 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속을 비운 몸이 가볍게 움직이듯이 욕망을 비운 마음이 자유로운 건 사실인가 봅니다. 순례자를 자처하는 수녀들의 노래는 가벼움을 넘어 경쾌한 그들의 발걸음을 떠올리게 하고, 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다 잠시 쉬고 있는 병사의 목소리는 이미 구원받은 영혼처럼 흔들림 없는 평화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