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으로 자립하기 위한 여정
이제 곧 불혹이라는 40세가 된다.
2023년부터 시행된 만 나이 통일법으로 이후, 나를 소개할 때 몇 살로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게 된다. 만 나이보다는 한국나이로 살아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일까, 아직도 만 나이는 어색하다.
만 나이로는 아직 38이지만, (한국) 나이로는 올해 40살이 된다. 많은 86년생들이 그렇듯 아홉수를 벗어나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올해가 40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온라인에도 84년생부터 86년생까지 "내가 올해 40이다"라며 나이에 대한 혼란 속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마도, 모두가 아직 새로운 기준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32살이 지나고부터는 내 나이를 정확히 대답하는 것이 헷갈렸다. 출산과 동시에 뇌의 기억력 기능 일부를 잃어버린 것인지. 다행히도 나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 하나는 확실하다. 첫째의 나이에 30을 더하는 것. 웃기게도 첫째의 나이는 절대 잊지 않는다. 그러니 아마 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어린 나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40년을 살면서 나를 표현하는 이름들이 많이 있었다.
어딘가의 철학관에서 받아온 내 이름 세 글자 이외에 태어나면서 정해진 "누구네 둘째 딸"로 시작한 나의 다른 이름. 초, 중, 고, 대학교를 지나오면서 "학생"이라는 이름. 작년까지 이어진 15년 차의 회사 생활로 얻은 "K기업의 L책임"이라는 직급이 있었다. 2016년,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엄마라는 이름은 평생 내려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정체성이 되었다. 이 이름들은 누군가에게는 부럽고,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보통 평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고,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러졌다. 그러다 번아웃이 찾아왔고,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챙기기 위해 육아휴직을 내고, 잠시 나는 회사의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나와 가족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육아휴직이라는 상태는 “책임”의 무게를 덜어주는 만큼,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온전한 나의 이름을 찾기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
퇴사가 아닌 끝이 정해져 있는 휴직이기에 마치 데드라인이 있는 숙제를 받은 것 마냥 마음이 조급하고 빨리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라는 압박감을 느낀다. 내려놓는 연습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은 방법을 모르겠다. 물론 지금 둘째의 겨울방학 기간이라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전혀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불리는 엄마라는 이름에 나 자신의 시간은 아직은 없는 듯하다.
당장 회사 업무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싹 지우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마치 컴퓨터에서 여러 가지 작업이 멀티로 돌다 보면 CPU에 빨간불이 뜨는 상태에서 과부하 작업을 하나 종료시키고 다시 초록색으로 돌아온 기분이랄까(이걸 이렇게 설명을 하면서도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해 아침부터 일어나면 각종 문제로 가득 차있는 회사 단톡방을 보면서 남은 후배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저 상황을 내가 해결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년에 충동적으로 시작한 이은경선생님과 함께하는 글쓰기 과정은 나를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을 달게 해 주었다. 이 이름을 얻은 지도 벌써 몇 달이 되었건만, 아직도 나는 작가라는 이름이 낯설다. 동기 작가님들을 보면서 미적거리는 나와 비교를 하게 되고.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마음은 뱁새처럼 다리를 찢지 않으려면 내 속도로 가야 한다는 깨달음과 충돌한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목차가 10개는 나와야 연재를 시작할 수 있겠는데, 숙제는 가까스로 해봤지만 그 어떤 주제로도 10편의 제목조차도 쓸 수가 없어 시작을 하지 못했다. 매거진 아래 글을 몇 개 끄적여 보기도 했지만, 연재라는 마감이 없으면 결국 쓰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번엔 계획 없이 시작을 했다. 다행인 건 마감 또는 인증과 같은 목표가 있으면 그래도 억지로라도 이어는 가는 성격이다.
“온전한 나의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내 이름이 세상 모두에게 알려지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내면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평온을 찾는 것일까?
아마 전자는 이루기도 힘들지만 내 성향과 맞지도 않을 것임은 안다. 그러면서도 온라인에서 만큼은 왠지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조차도 나를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 '시대예보:호명사회'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제 '나의 이름'으로 모두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름을 찾아갈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다이어리에 감사일기를 쓰고, 블로그에는 아이들과의 기록을 남겨 볼 작정이다. 하나만 잘 해나가도 대단한 일인 줄 알면서도 욕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한 번이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해니까.
그러면서도 워킹맘이라는 이름으로 미루고 미뤄놨던 집안 정리를 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정말 쉴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퇴근을 하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바닥이 안 보이는 거실과 뒤죽박죽 섞여서 널브러진 책들, 화장대 한구석에 쌓여있는 종이와 물건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바쁜 엄마라 늘 기다려달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던 아이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면서도 학원을 다니는 것만으로 부족했던 학습적인 부분들도 챙겨볼 생각이다. 평일에는 퇴근 후 혼자 먹고 들어갔던 저녁을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하며 먹을 것이고, 오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도 잔뜩 빌려올 거다(물론 겨울방학이 이제 시작돼서 이건 한동안 힘들 테지만).
운전면허 취득일이 2005년 1월 2일이라고 찍혀있는 만 21년이 된 장롱면허도 한번 쓸모를 다할 수 있도록 운전대도 다시 잡아보려고 한다. 내 이름으로 된 중고 경차를 마련해 도서관, 마트, 동네를 돌아다니는 상상을 한다. 일단 운전 연습을 먼저 해야겠지만.
임산부 시절을 제외하고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매일 갱신 중인 나의 몸의 변화도 주고 싶다. 복부 체지방량은 이미 위험으로 간지 오래고, BMI 수치는 겨우 정상에 걸쳐있어 이걸 정상 중에서도 초반으로 좀 수치를 내려보고 싶다. 야심 차게 커뮤니티 센터에 GX 수업을 2개나 등록하여 월, 화, 수, 목, 금요일 오전 10시를 모두 채워두었다. 안타깝게도 시작을 열정 넘치게 하고 싶었으나 둘째의 겨울방학으로 이미 2개 모두 첫 수업은 결석을 해버렸지만.
틈틈이 하루에 8 천보 이상은 걷기도 하고 싶다. 출퇴근을 하면 그래도 하루에 만보는 가볍게 채워졌는데 지난 일주일 동안 3 천보를 넘는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혼자서 동네 천을 따라 빠르게 걷기를 시작해 보고, 그러다 건강이 조금 좋아진다면 달리기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그만큼 시간도 부족하다. 하지만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걸어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