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 동기

고민 없는 헤어짐은 회피와 같다. 회피하면 어때서..?!

by 연윤


자신이 목적하는 행동의 동기가 '그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반대편이 싫어서'라면 이를 '회피 동기'라 합니다.
- 시대예보:호명사회 p.180~181


내가 하는 선택이 '회피 동기'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악을 피해서 차선을 택하며 살아온 내 삶은, 곧 회피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평준화였던 고등학교 입시에서 나는 처음 '회피 동기'로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중학교 성적으로 일반 고등학교 중 최상위권 학교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점수였다. 부모님은 고민 끝에 동네에 사시는 어느 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오셨다. 그 학교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모인 곳이였는데, 여기에 입학을 하면 내신 1등급으로 유지를 할 수 있어 대학 입시에 유리하다고 부모님에게 조언을 하셨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2군데의 고등학교였다. 1번, 동네 교장선생님이 알려주신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 2번, 아빠 회사 임직원 전형이 있는 사립 고등학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거리가 멀더라도, 최소한 이름은 들어본 곳이었으니까. 입학전 오티를 가보니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는 한 명밖에 없었다(그것도 거의 처음 본). 지금 생각하면 입시 결과를 보면 최선의 길이 되긴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 학교를 좋아서 선택한 건 아니었다. 다른 학교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이과(자연계)를 선택했다. 그 이유도 역시 회피였다. 나는 영어와 역사가 너무너무 싫었다. 수학이나 과학이 특별히 좋았던 건 아니지만, 차라리 낫다고 느껴졌다. 중학교때까지는 영어를 잘했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도저히 단어 암기량을 따라갈 수가 없었고, 영문법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결국, 나는 영포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영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첫째 아이에게 영어 실력은 이미 따라잡힌 것 같다).


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이었던 청소년기에도 나는 '회피 동기'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었다. 꿈이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나는 그때도, 지금도 특별히 바라는 꿈이 없다. 그럼에도 내 삶에 만족을 하면서 살고 있다. 보통의 나의 선택에 최선의 이유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것보다는 저게 낫지' 라는 이유로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까?






나의 가장 최근의 회피 동기는 바로 육아휴직을 선택한 것이다.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하다는 이유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사실 90% 회사를 다니기 싫어서 퇴사 대신에 선택한 육아휴직이었다. 나머지 10% 정도는 아이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긴 하다.

워킹맘으로 살며 집과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쌓이는 스트레스는 극심했다. 최근 2년동안 일과 집 사이에서 너무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내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다" 라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결국 점점 자존감이 떨어졌고 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나 자신을 취급하고 있었다. 회사에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이들 일을 해결해야 했고, 집에서는 회사와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초조함을 아이들에게 화로 풀었다. 매일 반성하고 다음날이면 똑같이 소리지르는 일상이 반복이 되었다.

2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도무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주말 내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안방에 누워만 있었다. 몇 주를 계속. 결국, 상담을 통해 번아웃 진단을 받았고, 결국 해결 방법으로 떠오르는건 뭐라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엄마라는 이름은 내려놓을 수 없었기에 나는 회사에서 도망쳤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즐길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억지로 즐기려 노력하다 지치기보다는, 피해도 되는 일이라면 피하는 게 낫다. 회피도 나름의 선택이다.

물론 회피로 인해 문제가 커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회피가 꼭 나쁜 건 아니다.
살다 보면 결국 해야 할 일은 하게 된다. 힘든 선택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는 것, 그게 바로 삶을 버티는 내 방식이다.


MZ라고 통틀어서 묶여버린 그들은 힘든일은 안하려고 한다며 비난받곤 한다. 하지만 나 역시 힘든 일이 싫다. 편하고 좋은 것만 하고 싶다. 야근 없이, 동료들과 커피 한잔하며 대화하는 게 더 좋은 건 당연하지 않은가? 해야 할 일은 하되,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나답게 사는 법’이라 부르고 싶다.

어려운 일은 일단 피하고 보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선택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피할 수 있을 때 피하고, 피할 수 없을 때는 버티며 살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니까.



회피동기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온전한 나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