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70년대로 돌아가 보자.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새마을 운동의 기반을 구축하며 새마을 운동의 의식을 확산하는데 집중하던 시기였다. 이와 동시에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탄생한 중형트럭 한 대가 있었으니, 그 차는 바로 민수용 군용 할 거 없이 사랑받던 기아마스타 복사다.
차명은 독일산 개의 품종인 복서에서 유래된다. 원래의 영어 발음이면 Boxer 즉 복서라 읽어야 정상인데 과거 70~80년대의 영어 발음은…..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포니를 “포-니”라 읽는다던지 스텔라를 “스뗄라”라고 읽는다던지 말이다. 그 당시의 어법이라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그리고 이 복사의 정식 명칭도 “복사”가 맞으니 말이다.
근간은
마쯔다에서
기아마스타 복사는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 마쯔다에서 부터 시작된다.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과거의 국내 자동차 산업은 해외 기업들의 협조를 받아 성장해 왔다.
이 복사 또한 마찬가지다. 마쯔다의 복서를 그대로 들여와 라이센스 생산하는 방식으로 판매가 이뤄졌다.
마쯔다 복서의 첫 출시는 1969년 10월에 일본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 당시 마쯔다도 급증하는 내수 공산품 시장에 발맞춰 열도의 수송 근대화에 이바지한 차량 중 하나로 손꼽히는 차종이다.
마쯔다 복서의 개발 배경은 안전, 편리함, 경제성의 조화를 중요시 여겨 개발에 임했고, 현지 트럭커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60년대에 나온
트럭 치고
단아한 외모를 자랑한다
일본 차들이 기능성을 중요시 여기는 부분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복서의 개발 배경은 안전, 편리함, 경제성을 바탕으로 개발된 중형트럭이다. 그중 일부분으로 헤드램프 위에 존재하는 안전유리가 그 증거다.
이 안전유리는 중형트럭 이상부터 고질적인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리이긴 하나, 실질적으로 시야각이 좁아서 별달리 실용성은 좋질 못했다.
또 한 가지 유명한 키포인트가 존재하는데, 바로 휠 너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휠 너트 커버다. 유난히 돌출되어 있는 이 커버는 승하차 시 발판으로도 사용이 가능했으며, 실제로 한국에서 생산된 복사에서도 이러한 활용도가 좋았다고 했다.
차체는 ‘ㄷ’자형 2중 프레임을 사용하여 중량이 높은 짐을 대응했다. 이 덕분에 덤프트럭은 물론이고, 각종 구난차로도 많이 쓰였다.
1971년
국내에 첫 출시
한국판 복사의 고향은 소하리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경기도 소하리 공장에서 복사가 생산이 되었고, 1976년에 기아자동차가 아시아 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버스 및 상용차를 광주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엔진은 마쯔다제 L6 3.8L YA 디젤 엔진을 탑재하여 최대 출력 110마력을 발휘했으며, 이 엔진은 영국의 디젤 엔진 제조 브랜드인 퍼킨스와 공동 개발한 엔진이다.
당시에 흔치 않게 5단 수동 변속기를 채택함과 동시에 배기 브레이크도 장착되어 제동력과 내구성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허나 일본에서도 힘이 없다고 원성이 자자했는데 당시에 한국 도로 사정에는 턱없이 부족한 출력이었다.
이에 1973년 마쯔다에서 배기량을 늘려 출력 개선하여 최대 출력 115마력을 내는 ZB 엔진이 탑재된다. 이후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며 1975년에는 최대 출력 145마력의 5.5L ZC 엔진을 장착하여 비로소 출력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졌다.
기아차에서
명맥을 이어나가다
1960년대부터 연이 닿기 시작했던 마쯔다와 기아다. 일본에서 단종이 되어 더 이상 복서는 생산되지 않지만, 기아에서는 복사란 이름으로 1993년까지 엠블럼만 소소하게 변하면서 판매를 이어나갔다.
국내에서 정말 다양한 업종에 사용되었다. 위생차, 트레일러, 카고, 냉동 탑차 등등 한국 산업 현장에는 언제나 복사가 존재했다.
꾸준히 명맥을 이어나가다 1992년 일본 상용차 전문 브랜드 히노에서 레인저 3세대 모델인 바람의 레인저(???)의 베이스 모델로 정하고 기아차에서 디자인을 다듬어서 생산한 2세대 복사가 출시되었다.
1994년에는 기아차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CI를 교체가 이뤄졌다. 따라서 기존 굴뚝 모양의 마크 대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간색 타원형 KIA 마크로 변경되어 생산되었다. 처음 계획은 2세대 복사가 출시됨과 동시에 1세대 복사를 단종시키는 게 기아차의 계획이었으나, 전작 대비 신통치 않은 판매량 때문에 1993년까지 병행 생산 및 판매가 되었다.
군용차
국산화의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옛날 아버지 세대분들에게 K300을 아시냐 물어보면 “아…. 그… 그 뭐시냐…. 복사?”라고 기억하실 분들이 꽤 있으실 거다.
아니 대부분 군필자라면 이차를 기억하실 거다. 당시 복사의 차체에 여러 차례 개수를 거친 후에 군용으로 납품되었던 차량이 복사이기도 했다.
민수용 기반으로 만든 군용차다 보니 전술용 트럭으로는 퍼포먼스에서 빈약했었으나, 정화조 차, 물자 조달 등에 많이 쓰였으며, 주로 경찰에서도 수송 트럭으로 많이들 사용했었다.
이 K300을 토대로 각종 군용차량의 부품이 국산화가 이뤄지기 시작했으며 민수용 차량을 기반으로 군용화를 하는데 성공적인 케이스로 분류되어 오늘날에 자체적으로 군용차를 만드는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는 역사적인 녀석이 되겠다.
앞서 전술했다시피 복사는 70년대~90년대 산업현장의 훌륭한 일꾼이었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군용 복사도 기하급수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기아 복사”라고 말하면 뭔 찬지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만, 그래도 한번쯤은 소개하고 싶어서 이렇게 적는다.
시대가 원해서 나왔고, 원한만큼 오랫동안 생산되어 사랑받았던 트럭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아직까지 4륜으로 개조된 복사가 산길을 누빈다는 소문이 종종 들려오고 있는데, 그만큼이나 쓰임새가 좋은 차라는 생각이 든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기아마스타 복사, 특유의 동그란 눈망울이 참으로 매력적인 녀석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