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운전대를 잡으면 누구나 습관적으로 속도를 줄이게 된다. '빗길에서는 20 감속'이라는 운전 상식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젖은 노면은 마찰력이 낮아 제동거리가 길어지므로 평상시보다 여유 있게 속도를 줄이는 게 맞다.
하지만 일률적인 감속이 오히려 사고를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차량에는 각종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탑재돼 있어 기존보다 주행 안정성이 높아졌고, 고속도로 및 도로설계 역시 법정 속도를 기준으로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감속'이 오히려 차량 밸런스를 해칠 수 있다. 즉, 상황에 따라서는 감속보다는 규정 속도 유지를 고려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한 주행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 출시된 신차에는 차선 유지 보조, 긴즙 제동 시스템, 전방 충돌 경고 등 다양한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가 기본 적용되거나 선택 가능하다. 하지만 이 장치들이 항상 안전을 담보하진 않는다.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는 전방 카메라나 레이더 센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오히려 ‘차선 유지’나 ‘차간거리 유지’ 기능이 주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급정지 상황에서 오작동하거나 반응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악천후 조건에서는 일부 운전자 보조 기능을 과감히 꺼두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더불어 정차 시 자동으로 엔진을 꺼주는 ‘아이들링 스톱’ 기능도 이런 상황에서는 해제해두는 것이 좋다. 시동이 순간 꺼졌다 다시 켜질 때 전기 계통이나 브레이크 반응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웅덩이 지날 땐 ‘엔진 회전 유지’
폭우가 쏟아진 뒤 물이 고인 도로나 과속방지턱 앞 물웅덩이는 시야 확보가 어렵고 깊이를 예측하기 힘들어 특히 조심해야 한다. 단순히 속도를 줄이기만 하면 안심할 수 없다. 물 웅덩이를 지날 때는 저속 주행과 함께 엔진 회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물이 배기구로 역류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배기구나 낮게 위치한 차량이나, 정차 시 엔진 회전이 극도로 낮아지는 차량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깊은 물에 장시간 노출되면 배기 시스템뿐만 아니라 전자제어 유닛(ECU)까지 손상될 수 있어 수리비만 수백만 원이 들 수 있다. 폭우 시에는 미리 배수 상태가 양호한 경로를 확인하고, 부득이하게 웅덩이를 지나야 할 경우 기어를 낮춰 회전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통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속’보다 ‘상황별 대처’가 관건
결국 빗길 안전운전의 핵심은 단순한 감속이 아니다. 운전자가 현재 도로 상태, 차량 상태, 주행 속도, 주변 교통 흐름 등을 모두 종합해 유연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속은 기본이지만, 무조건 속도를 줄이면 오히려 차량 밸런스를 해치거나 뒤차와의 추돌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더불어 최신 운전자 보조 시스템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다.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센서 인식 한계나 전자 제어 오작동 가능성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량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고, 필요시 수동으로 끄는 법을 익혀 두는 것도 안전운전에 큰 도움이 된다. 빗길은 ‘느리게 달리는 것’보다 똑똑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