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초보운전’ 딱지는 도로 위 약자의 신호였다. 운전이 서툴지만 양보해 줘서 고맙다는 메시지였고, 많은 운전자가 이를 배려의 기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도로 위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2010년 초에 운전면허 취득 난이도가 낮아지고, 2019년과 2020년 OECD 국가 중 교통사고 1위라는 불명예를 얻자, ‘초보운전 스티커 빌런’, ‘김여사’ 등 초보운전 표시를 단 차량은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도로 위의 움직이는 폭탄이라는 등의 놀림과 조롱, 심지어 공격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초보면 집에 있어라”, “딱지 붙였다고 다 용서받는 건 아니다”. 이런 댓글이 달리는 현실은 이 단순한 표식의 인식이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초보운전자 탓일까? 사회적 인식의 균열
일부에서는 초보운전 딱지가 신뢰를 잃게 된 이유를 일부 초보 차량의 난폭 운전에서 찾는다. 실제로 SNS나 커뮤니티에서는 초보 운전 스티커를 달고 급차선 변경하거나 방향지시등 없이 끼어드는 차량, 고속도로에서 과속·급브레이크를 반복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유된다. 초보라 해도 운전 매너를 지키지 않는 모습은 다른 운전자에게 경계심을 심어주기 충분하다. 그 결과, 초보 딱지는 배려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믿을 수 없는 차량’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그저 운전에 서툴러서 고의가 아니었어도 난폭운전으로 보이는, 반대의 현실도 분명히 존재한다. 초보운전자가 안전하게 운전하려 해도 도로 환경 자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존 운전자들이 양보하지 않거나 경적을 울리는 등 위협 행동을 일삼는 상황은 초보자의 긴장을 더 높인다.
도로 위 배려는 왜 사라졌나?
우리나라 운전 문화는 점차 ‘배려’에서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클랙슨이 울리고, 차선을 두고 양보보다 선점이 우선시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초보운전 딱지는 오히려 느리고 방해되는 존재로 인식되기 쉽다. 배려보다 효율, 이해보다 속도가 우선인 도로 환경은 초보자뿐 아니라 운전자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안긴다. 과속, 급정거, 보복운전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과는 달리 초보운전 딱지는 법적 강제 사항이 아니다. 다시 말해, 초보 운전자를 보호할 법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어떤 운전자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오히려 무시당할까 봐 아예 부착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도로 위 약자의 표시가 역효과를 내는 꼴이 된 셈이다.
'비하'가 아닌 '이해'로
초보운전 딱지가 본래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선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누구나 운전 초보였던 시절이 있었고, 실수할 수 있다. 도로교통공단이나 지방자치단체, 경찰청 등에서 초보운전자 배려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온라인상에서 ‘초보 조롱 콘텐츠’를 자제하는 분위기도 함께 조성돼야 한다.
앞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일본이나 독일 등 일부 국가는 초보 운전자 표시를 의무화하고, 그 차량에 대해 배려를 유도하는 공공 캠페인을 병행한다. 단순한 스티커 하나로 안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스티커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진짜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초보운전 딱지를 다시 배려의 언어로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는 지금 다시 한번 방향을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