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에 서울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왜 이렇게 안 가?”라는 답답함. 시속 20km/h도 안 되는 속도로 달리는 버스를 뒤따르며 경적을 울리는 차량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뒤따라오는 광역버스 기사들이 고의로 신호에 걸리는 기사한테 찾아가 비난하고 오는 모습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내버스가 너무 느려서 답답하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아무리 회사에 민원을 넣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서울의 시내버스 기사들은 느리게 운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단순한 운전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적인 원인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안전운전 점수 때문에 느리게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속도 제한 장치’다. 현재 서울 시내버스에는 안전운전이라는 명목 아래, 차량에 속도 제한 장치가 설치돼 있다.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시속 50km 정도에서 자동으로 감속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교통량이 적은 새벽이나 버스 전용 차로가 확보된 구간에서도 빠르게 달릴 수 없다.
게다가 버스 기사들의 인사 평가 지표는 정시성, 안전운전 점수, 민원 건수가 중심이다. 여기서 속도는 빠를수록 좋지 않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도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류장을 몇 분 먼저 지나쳤다가 민원이 들어오거나, 급정거·급가속으로 점수를 깎이면 기사에게 불이익이 돌아온다. 그러니 기사는 오히려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속도를 일부러 늦춰 신호에 걸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기다리는 승객, 타고 있는 승객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다.
“운행 횟수 조절 목적의 고의 감속도 있어...”
또 다른 문제는 운행 횟수와 관련돼 있다. 서울시의 시내버스 운영 체계는 준공영제 방식이다. 수익과 무관하게 일정 운행 횟수나 거리, 근무 시간을 채우면 그에 따른 비용이 지급된다. 그런데 서울 시내버스는 노선당 일일 운행 횟수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일부 기사들은 너무 빨리 회차 지점에 도착하면 운행 횟수가 늘어나거나, 불필요한 대기가 생긴다는 이유로 느리게 운전하기도 한다.
일종의 시간 벌기라고 할 수 있다. 회차 지점에서 쉬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도록 천천히 주행하면서 시간을 맞추는 셈이다. 이는 기사 개인의 탓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한계다. 특히 복잡한 도심이나 출퇴근 시간대에는 정체를 이유로 어느 정도 속도 저하가 용인되기 때문에, 의도적 저속 운행이 시스템적으로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 피해는 결국 시민들이 고스란히 입게 된다.
느림의 미덕일까, 제도의 빈틈일까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안전을 위한 저속은 이해되지만, 너무 심하다”라는 반응이 많다. 출근길 지각 위기나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느릿한 버스를 타게 되면, 다음부터는 지하철이나 택시를 선택하게 된다. 버스의 경쟁력이 사라지고, 효율성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너무 느린 운행 역시 인사 평가 감점 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정시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느린 운전도 문제로 지적해 평가 항목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안전과 효율의 균형을 맞추려면, 기사들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