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누적 판매 3000만대를 넘어섰다. 1986년 현대차가 ‘엑셀’을 앞세워 미국 땅을 처음 밟은 지 39년 만의 성과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본의 대표 브랜드 도요타와 혼다가 같은 기록을 달성하는 데 각각 54년, 47년이 걸렸다는 점에서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미국 시장에서 단단히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를 단순한 판매량 증가로만 보지 않는다. 관세, 전기차 세액공제 축소, 치열한 현지 브랜드와의 경쟁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현지화 전략’과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돌파구를 찾아낸 결과로 평가한다. 현대차·기아가 향후 미국 내 점유율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누적 3000만대를 돌파한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 2005년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2010년 조지아 기아 공장에 이어 지난 3월 조지아 서배너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완공하면서 미국 내 생산기지는 총 세 곳으로 늘었다. 이 같은 생산 거점 확대는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물류비를 줄이고, 미국 정부가 부과한 자동차 25% 고율 관세 충격을 흡수하는 효과를 냈다. 실제로 소비자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지 않으면서도 판매 증가세를 유지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도요타와 혼다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 3000만대를 넘기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현대차·기아의 성과는 더 도드라진다. 일본 브랜드들은 진출 당시 미국 내 ‘가성비’를 앞세워 성공을 거뒀지만, 현대차·기아는 품질 논란과 브랜드 인지도 부족 등 후발주자가 겪어야 하는 불리함을 극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39년 만에 일본 업체보다 빠른 속도로 같은 고지에 오른 것은 미국 시장에서의 제품 경쟁력과 브랜드 신뢰가 그만큼 단단히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한 대응이다. 미국 정부가 전기차 세액공제를 축소하면서 전기차 판매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자, 현대차·기아는 빠르게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차 판매 비중을 조정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 점유율은 5.1%였지만, 하반기에는 6%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단기적 손익보다는 점유율 방어와 확장에 무게를 두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치열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수준이 아니라,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현대차·기아의 3000만대 돌파는 결승선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이미 글로벌 완성차 시장은 전기차 전환, 무역 장벽 강화, 지역별 소비 패턴 변화 등 거대한 격변기에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 판매량 확대만으로는 미래 경쟁력을 보장할 수 없다. 현지 생산 확대, SUV·픽업트럭 등 맞춤형 라인업 강화, 그리고 전동화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동시에 요구된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세 번째 공장인 HMGMA에서 전기차 전용 모델과 배터리 모듈을 본격 양산하게 되면, 전동화 경쟁에서도 확실한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보조금 축소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력’과 ‘현지 조달’을 무기로 내세운다면, 미국 시장 내 입지는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궁극적으로 현대차·기아가 추구해야 할 것은 단기 점유율 상승을 넘어 ‘브랜드 이미지 강화’다. 단순히 많이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미국 소비자에게 품질·신뢰·혁신을 동시에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39년 만에 도요타와 혼다보다 앞서 3000만대 고지를 밟은 한국차가 이제 어떤 미래를 열어갈지,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