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기아
2025년 대한민국 전기차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경쟁력 있는 신차들이 쏟아져 나오고 충전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이러한 폭발적인 관심이 되려 하반기 전기차 구매를 계획하던 소비자들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전기차 구매의 핵심 조건인 구매 보조금이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성비 전기 SUV’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국내 상륙한 기아의 신형 전기차 ‘EV5’가 보조금 대란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미지 : 기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국가가 지원하는 국비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지방비로 구성된다. 차량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는 만큼, 보조금 수령 가능 여부는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 재원, 특히 지방비가 전국적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의 최신 정보에 따르면, 9월 초 현재 인천, 대구, 대전, 울산을 비롯해 천안, 포항, 순천, 전주, 세종 등 전국 20여 개가 넘는 주요 지방자치단체가 올해 전기차 보조금 접수를 이미 마감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보조금 소진율이 80%를 넘어 사실상 마감 대기 상태인 지자체도 40여 곳에 달하며, 이들 지역 역시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중 접수 종료가 유력한 상황이다. 서울시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연내 보조금을 통한 신차 구매가 불가능해지는 보조금 절벽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처럼 예년보다 빠른 보조금 소진 속도는 정부의 보조금 집행 시기가 앞당겨진 점과 경쟁력 있는 신차 출시 효과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환경부는 올해 보조금 정책을 조기에 확정하고 2월부터 집행에 나섰고, 기아 EV3를 비롯한 매력적인 신차들이 상반기에 쏟아져 나오며 잠재 수요를 끌어냈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내에 신규 등록된 전기차는 11만 8,71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무려 67%나 급증했다. 시장의 성장세는 긍정적이지만, 한정된 예산이 조기에 소진되면서 하반기 신차 구매 희망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게 된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 의사를 위축시켜, 모처럼 맞이한 시장 활성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제조사의 판매 전략에도 심각한 차질을 빚게 만든다.
이미지 : 기아
이러한 보조금 대란 속에서 가장 안타까운 시선이 쏠리는 모델은 바로 기아 EV5다. 기아가 EV6, EV9에 이어 5번째로 선보이는 전용 전기차 EV5는 준중형급 SUV로, 9월 4일부터 공식 계약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국내 상륙을 알렸다. EV5가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은 이유는 단연 압도적인 ‘가성비’에 있다. 81.4kWh의 NCM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460km의 준수한 주행거리를 확보했으며, 넓고 실용적인 실내 공간과 최신 편의·안전 사양을 갖췄음에도 시작 가격을 4,855만 원으로 책정해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정부의 2025년 전기차 보조금 정책상 5,500만 원 미만 차량은 보조금 100% 지급 대상이다. 따라서 EV5는 국비 보조금 전액과 지방비 보조금을 모두 수령할 수 있어, 실구매가는 3천만 원대 후반에서 4천만 원대 초반에 형성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보조금 조기 소진 사태가 EV5의 발목을 잡고 있다. 차량 자체는 보조금 수령 자격을 완벽히 갖추었지만, 정작 차량을 구매할 소비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지자체 보조금이 소진되었다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국비 보조금은 지자체 보조금이 확보되어야만 집행되기 때문에, 지방비가 마감된 지역의 소비자는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이 넘는 보조금 혜택 없이 차량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기아가 야심 차게 준비한 ‘가성비’라는 최대 무기가 무력화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EV5가 차량의 높은 상품성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소진 이슈로 인해 초기 판매량이 예상보다 저조할 수 있다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미지 : 기아
EV5의 출시는 국내 전기차 시장의 대중화를 이끌 중요한 기회였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과 예측을 뛰어넘는 시장 성장세가 맞물리며 발생한 ‘보조금 엇박자’는 아쉬움을 남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차를 합리적인 가격에 살 기회를 놓치게 되고, 제조사 입장에서는 공들여 개발한 신차의 초기 판매 동력을 잃게 될 위기다.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보조금 재원 확보가 절실하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한편, 정부는 신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이 30%에 도달할 때까지는 각종 지원책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전기차 보조금 단가를 올해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지원 의지를 보였다. 이는 내년에도 보조금 중심의 전기차 시장 성장이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결국 보조금이 마감된 지역의 소비자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년 보조금 재개를 기다리거나, 보조금 없이 생돈을 모두 지불하고 차를 구매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EV5의 본격적인 흥행 여부는 꼬여버린 보조금 실타래가 풀리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