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현대차
중고차 구매를 앞둔 소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 갈림길이 있다. 바로 ‘짧은 주행거리의 연식 지난 차’와 ‘주행거리는 길지만 연식 좋은 차’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마치 ‘짬뽕이냐 짜장면이냐’처럼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이 문제는 구매자의 예산과 향후 차량 유지 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중고차는 무조건 주행거리 짧은 게 왕’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자동차 기술의 상향 평준화와 소비자들의 정보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연식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승용차의 연평균 주행거리는 약 1만 5,000km 수준이다. 이 기준을 놓고 볼 때, 연식에 비해 주행거리가 현저히 짧거나 길 경우 소비자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과연 어떤 선택이 더 현명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미지 : 픽플러스
중고차 시장에서 짧은 주행거리는 여전히 강력한 매력 포인트다. 주행거리가 짧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엔진과 변속기를 비롯한 주요 부품들의 사용 빈도가 낮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차량 내부의 시트나 대시보드 등 내장재의 상태가 깨끗할 확률도 높다. 예를 들어, 5년 된 5만km 주행 중고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연평균 주행거리(약 7만 5,000km)보다 2만 5,000km나 적게 뛴 이 차는 ‘매우 잘 관리된 차’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국내 최대 중고차 플랫폼 엔카닷컴의 시세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동일 모델과 등급일 경우 연식보다는 주행거리가 중고차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직 많은 소비자들이 주행거리를 차량의 상태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다는 방증이다. 즉, 주행거리가 짧은 차는 나중에 되팔 때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바로 제조사 무상 보증 기간의 종료다. 대부분의 국산차는 차체 및 일반 부품에 대해 3년/6만km, 엔진과 변속기 등 동력계(파워트레인) 핵심 부품에 대해서는 5년/10만km의 보증 기간을 제공한다. 앞서 예로 든 ‘5년 된 5만km 주행 차량’의 경우, 주행거리는 넉넉하게 남아있지만 연식 기준으로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엔진이나 변속기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하더라도 모든 수리비를 온전히 차주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수리비 폭탄을 맞을 리스크를 안고 가는 셈이다. 또한, 운행이 적었더라도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된 각종 부품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삭고 경화되는 ‘경년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미지 : Depositphotos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행거리가 8만km에 달하는 중고차를 생각해 보자. 연평균 주행거리(약 3만km)를 훌쩍 뛰어넘는 이 차는 ‘험하게 탄 차’ 또는 ‘영업용 이력이 있는 차’라는 선입견을 주기 쉽다. 높은 주행거리 때문에 선뜻 구매 버튼을 누르기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런 차가 ‘숨은 진주’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짧은 기간 동안 장거리를 운행했다는 것은 시내 주행처럼 가다 서기를 반복하기보다는 고속도로 위주로 정속 주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자동차는 시동을 걸 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잦은 변속과 제동이 반복되는 시내 주행은 엔진과 변속기에 상당한 피로를 누적시킨다. 반면, 고속도로 정속 주행은 오히려 차량 길들이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전반적인 컨디션이 동급의 짧은 주행거리 차량보다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연식 좋은 차의 가장 큰 장점은 살아있는 제조사 보증 기간이다. 2년 된 8만km 주행 차량의 경우, 일반 부품 보증(3년/6만km)은 끝났을 수 있지만, 아직 5년/10만km 조건의 엔진 및 동력계 핵심 부품 보증은 3년 또는 2만km나 남아있다. 이는 중고차 구매의 가장 큰 불안 요소인 ‘고장’에 대한 걱정을 상당 부분 덜어주는 결정적인 안전장치다. 만약의 경우에도 무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어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연식이 최신인 만큼 구형 모델에는 없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개선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향상된 연비 등 더 나은 기술과 편의 사양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도 명확하다.
이미지 :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주행거리와 연식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주행거리 짧은 5년 된 차’는 당장의 부품 마모도는 적을 수 있지만 보증 기간 만료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으며, ‘연식 좋은 2년 된 차’는 긴 주행거리가 찜찜하지만 핵심 부품 보증과 최신 기술이라는 확실한 장점을 품고 있다.
따라서 현명한 소비자는 숫자의 함정에 빠지기보다 차량의 실질적인 가치를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시운전(테스트 드라이브)’이다. 특히 연식이 좋고 주행거리가 많은 차를 고려한다면, 시운전을 통해 엔진의 소음이나 진동이 비정상적이지는 않은지, 변속 충격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또한, 해당 차량의 보험 처리 이력과 함께 공식 서비스센터나 정비소에서 관리한 ‘정비 이력’을 확인하여 오일 교환 등 기본적인 소모품 관리가 주기적으로 잘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최종적인 선택은 구매자의 운전 습관, 예산, 그리고 무엇을 더 중요한 가치로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제는 무조건 주행거리 짧은 차를 고집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점이다. 남아있는 보증 기간을 최우선으로 확인하고, 꼼꼼한 시운전과 정비 이력 조회를 통해 차량의 진짜 컨디션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복잡한 중고차 시장에서 후회 없는 ‘내 차’를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