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제네시스
‘국산 유일의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타이틀과 함께, 대한민국 고급차 시장의 자존심으로 여겨졌던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위상이 심상치 않다. 출범 이후 줄곧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성장 가도를 달려왔지만, 2025년 들어 뚜렷한 판매 부진에 직면하며 경고등이 켜졌다. 꾸준한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선이 높아진 상황에서, 영원한 경쟁 상대인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전례 없는 할인 공세로 가격 격차를 없애버리면서, “그 돈이면 벤츠, BMW 사겠다”며 돌아서는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가성비 좋은 고급차’로 시장에 안착했던 성공 공식이 이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돌아온 형국이다. 국산차의 자존심을 지켜온 제네시스가 어쩌다 수입차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신세가 된 걸까?
이미지 : 제네시스
제네시스의 위기는 최근 발표된 판매량 수치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대차 판매 실적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제네시스의 국내 누적 판매량은 78,65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88,772대)보다 11.4%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전체 내수 판매량이 2% 이상 증가하고, 수입차 전체 시장은 13% 이상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제네시스만의 ‘나 홀로 역주행’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특히 브랜드의 판매량을 견인해야 할 핵심 주력 모델들의 부진이 뼈아프다. 브랜드의 얼굴마담이자 플래그십 세단인 G80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2% 감소했으며, 주력 SUV인 GV80은 무려 26.1%나 급감하며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연식 변경과 상품성 개선을 명분으로 꾸준히 가격을 인상해 온 것이, ‘프리미엄의 가치 상승’이 아닌 ‘소비자의 외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같은 기간 수입차 시장은 그야말로 활황이다. 2025년 1~8월 수입차 전체 판매량은 19만 2,514대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3.3%나 증가하는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전기차 시장의 강자 테슬라는 올해 8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55.1%나 폭증하며 제네시스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처럼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가 주춤하는 사이, 독일 3사를 필두로 한 수입차들이 그 빈자리를 무섭게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 제네시스
제네시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경쟁 수입차 브랜드들의 ‘공격적인 할인 정책’이 꼽힌다. 과거에는 국산과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 사이에 수천만 원의 명확한 가격 차이가 존재했지만, 이제는 그 격차가 거의 사라지면서 제네시스만의 매력이 완전히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9월 현재, BMW의 주력 세단인 5시리즈는 트림에 따라 800만 원에서 최대 1,250만 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할인을 제공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 역시 재고 모델을 중심으로 약 1,000만 원 수준의 강력한 할인을 통해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7천만 원대에서 시작하는 BMW 520i 모델의 경우, 할인을 적용하면 6천만 원대 초반에 구매가 가능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네시스 G80의 시작 가격인 5,899만 원이 더 이상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불과 몇백만 원만 더 보태면 ‘수입차의 대명사’이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E클래스와 5시리즈를 구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수입차 전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결국, G80을 구매하려던 소비자들이 할인 정보를 접하고 계약을 파기하거나, 처음부터 비교 선상에 올려놓고 고민하는 사례가 속출하며 고객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지 : 제네시스
제네시스는 출범 이후 ‘가성비 좋은 프리미엄’이라는 영리한 전략으로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성공 공식의 유효기간이 다했다는 냉혹한 경고등이 켜졌다.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격 인상은 장기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소비자들이 기꺼이 그 가격을 지불할 만한 압도적인 상품성과 ‘제네시스만이 줄 수 있는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외면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경쟁자들이 파격적인 할인으로 문턱을 스스로 낮추며 총공세에 나선 지금, 제네시스는 가격표의 숫자 너머에 있는 브랜드의 본질적인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진정한 브랜드 파워와 팬덤으로 승부해야 할 시험의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