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EUROPOL
영화 ‘분노의 질주’나 ‘오션스 일레븐’에서나 볼 법한 최첨단 자동차 절도 행각이 유럽 대륙을 뒤흔들었다. 단순한 차량 파손이나 강탈이 아닌, 첨단 IT 기술과 국제적인 유통망, 그리고 암호화폐까지 동원한 기업형 절도 조직이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특히 이들은 고가의 하이브리드 차량만을 전문적으로 노려, 전동화 시대로 접어든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범죄 유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0월 7일, 유럽연합 경찰기구인 유로폴(Europol)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전역에서 100대 이상의 고급 하이브리드 차량을 훔친 전문 절도 조직을 국제 공조 작전을 통해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훔친 차량의 총가치는 최소 300만 유로(한화 약 42억 원)에 달하며, 그 범죄 수법의 치밀함은 한 편의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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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검거된 조직은 주로 몰도바 국적자로 구성된 러시아어 사용 범죄 네트워크로, 유로폴은 이들이 ‘군대식 정밀함(military-style precision)’으로 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범죄는 총 3단계에 걸쳐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타겟을 선정한 후 감시를 시작한다. 이들은 이탈리아 북부나 스페인의 휴양지 마르베야 등 부유층이 모이는 곳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목표 차량을 정하면, 소유주 몰래 차량 하부에 GPS 추적 장치를 부착하여 실시간으로 동선을 감시했다.
그 후 감시하던 차량이 외진 곳에 주차되면, 키 복제기나 신호 방해 장치(재머) 등 첨단 전자 도구를 이용해 차량의 보안 시스템과 경보 장치를 무력화하고 흔적 없이 차를 훔쳤다. 강제로 문을 열거나 유리를 깨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소유주는 차가 사라진 사실조차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도난된 차량은 즉시 조직의 비밀 창고로 옮겨져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폐차되었거나 사고로 등록 말소된 차량의 차대번호(VIN)를 훔친 차량에 그대로 이식하는, 이른바 ‘VIN 복제’ 수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이렇게 완벽하게 위장된 차량과 배터리팩, 엔진 등 주요 부품들은 벨기에의 앤트워프 항구를 통해 중동 등 국제 암시장으로 유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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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범죄 조직의 치밀함은 자금 세탁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이들은 차량 판매 대금을 여러 단계에 걸쳐 암호화폐로 지급받는 복잡한 결제 시스템을 이용했다. 이는 국제 사법기관의 자금 추적을 교란시켜 범죄 수익을 은닉하기 위한 수법으로, 이들이 단순한 좀도둑이 아닌 고도로 조직화된 범죄 집단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탈리아와 스페인 경찰은 2024년부터 합동 조사를 시작했으며, 유로폴과 유럽사법협력기구(Eurojust)의 지원을 받아 국제 공조 수사로 전환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7일,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경찰 소속 100여 명의 인력이 동시 작전을 펼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등에서 조직원 9명을 체포했다. 현장에서는 도난 차량 4대와 함께 현금 3만 5천 유로, 그리고 15만 유로(약 2억 1천만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압수하며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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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하이브리드 전문 털이범’ 사건은 자동차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범죄자들에게도 새로운 무기를 쥐여줄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다.
키리스 엔트리, 커넥티드 서비스 등 첨단 기술의 허점을 파고드는 신종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제조사와 각국 사법기관, 그리고 국제기구의 더욱 긴밀한 기술 협력과 정보 공유가 시급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이번 검거 작전은 국경을 넘나드는 첨단 범죄에 맞선 성공적인 국제 공조의 모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