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현대차
자동차 시장에서 ‘중고차는 신차보다 싸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경형 전기차시장에서는 이 상식이 완전히 뒤집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인기 경형 전기 SUV ‘캐스퍼 일렉트릭’의 신차 출고 대기가 극단적으로 길어지면서, 일부 신차급 중고차가 오히려 새 차보다 비싸게 팔리는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 계약해도 내후년에나 받을 수 있다’는 극심한 공급 부족이 웃돈(프리미엄) 거래를 부추기며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6개월이라는 역대급 출고 대기가 낳은 웃지 못할 기현상의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사진 출처 =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의 인기는 출시 직후부터 뜨거웠다. 귀여운 디자인과 경차의 경제성, 그리고 전기차의 친환경성까지 모두 갖춰 사회초년생과 세컨드카 수요층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문제는 이 수요를 생산 능력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10월 현재, 현대차가 공식적으로 밝힌 캐스퍼 일렉트릭의 예상 납기 기간은 주력 트림인 ‘인스퍼레이션’ 기준으로 무려 16개월에 달한다. 일부 옵션이나 색상을 선택할 경우 최대 22개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는 반도체 수급난이 극심했던 시절의 인기 차종 대기 기간을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사실상 ‘지금 계약하면 내후년에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출고 대기가 기약 없이 길어지자, 당장 차가 필요한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고차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수요를 간파한 일부 중고차 딜러들이 ‘프리미엄’을 붙여 매물을 내놓으면서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출처 = 엔카
실제로 중고차 거래 플랫폼에는 캐스퍼 일렉트릭 매물이 심심치 않게 올라와 있다. 언뜻 보면 신차 가격보다 저렴해 보이는 매물도 많다. 하지만 여기에는 교묘한 ‘눈속임’이 숨어있다. 바로 전기차 구매 시 받은 정부 및 지자체 보조금이 중고차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한 중고차 플랫폼에는 2025년 8월에 등록된 주행거리 1,000km 미만의 캐스퍼 일렉트릭 인스퍼레이션 트림(신차 가격 약 3,026만 원) 매물이 3,220만 원에 올라와 있다. 신차 가격보다 200만 원가량 비싸지만, 즉시 출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보조금 변수를 더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캐스퍼 일렉트릭 인스퍼레이션 트림은 서울시 기준으로 국고와 지자체 보조금을 합쳐 약 500만 원 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즉, 신차의 실제 구매 가격은 2,500만 원대 초반인 셈이다. 결국, 3,220만 원짜리 중고 매물은 보조금을 고려한 신차 실구매가보다 최소 310만 원 이상 비싼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결국 신차를 즉시 인도받을 수 없다는 소비자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해, 일부 중고차 딜러들이 과도한 중간 마진을 챙기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시장 왜곡 현상인 셈이다.
사진 출처 =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의 ‘신차보다 비싼 중고차’ 현상은 극심한 수급 불균형이 낳은 시장의 기형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물론 웃돈을 주고라도 당장 차를 받고 싶은 소비자의 선택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정상적인 시장 질서를 해치고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현대차의 생산 능력 정상화뿐이다. 계약 후 1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비정상적인 출고 적체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프리미엄’ 딱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대차는 캐스퍼 일렉트릭의 생산 라인을 증설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통해,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차량을 제때 인도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