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Police Czech Republic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헬멧과 풀 레이싱 슈트로 온몸을 가린 의문의 운전자가 F1 머신을 닮은 포뮬러 레이싱카를 몰고 체코의 일반 도로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2019년 처음 목격된 이후, 그의 주행 영상은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도로 위의 유령’, ‘체코의 F1 빌런’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며, 그의 대담하고 위험천만한 기행은 수년간 체코 경찰을 따돌리며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수많은 추측과 루머를 낳았던 이 아슬아슬한 질주극.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5년간 이어진 그의 기행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체코 경찰이 끈질긴 추적 끝에 이 미스터리한 운전자를 체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의 이목이 다시 한번 집중되고 있다. 현실판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방불케 했던 그의 5년간의 도주와 마침내 밝혀진 정체는 무엇일까?
사진 출처 = Police Czech Republic
수많은 목격자 영상 속에서 포착된 차량은 영락없는 페라리 F1 머신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동차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이 차량의 진짜 정체는 실제 F1 머신이 아닌, F1의 바로 아래 단계 서포트 레이스인 GP2 챔피언십(현재는 FIA 포뮬러 2 챔피언십으로 변경)에서 사용되었던 ‘달라라(Dallara) GP2/08’ 모델로 밝혀졌다. 이탈리아의 레이싱카 전문 제조사인 달라라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GP2 시리즈 팀들에게 공급했던 표준 섀시 모델이다.
비록 F1은 아니지만, GP2 머신 역시 일반 도로 주행과는 거리가 멀다. 달라라 GP2/08은 르노에서 공급받은 4.0리터 V8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이 약 612~620마력에 달하며, 차체 무게는 600kg대에 불과해 상상을 초월하는 가속력과 코너링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오직 서킷 경주만을 위해 태어난 이 차량에는 헤드라이트, 방향지시등, 브레이크등과 같은 필수적인 조명 장치가 전혀 없고, 배기가스 정화 장치나 소음기도 없다. 당연히 번호판 부착도 불가능하며, 지상고가 극단적으로 낮아 일반 도로의 과속방지턱조차 넘기 힘들다.
이처럼 일반 도로 주행 자체가 불가능하고 위험천만한 레이싱카를 몰고, 이 운전자는 2019년부터 체코 프라하 남서부를 잇는 D4 고속도로 등 주요 도로에서 헬멧과 레이싱 슈트까지 완벽하게 착용하고 버젓이 주행을 이어왔다. 그의 모습은 마치 게임 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었고, ‘도로 위의 유령’처럼 여겨지며 유튜브 등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온라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부 영상에서는 다른 차량들을 아슬아슬하게 추월하는 모습까지 포착되어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사진 출처 = Police Czech Republic
체코 경찰은 2019년 첫 신고 이후 수년간 이 의문의 운전자를 추적해왔다. 하지만 그의 신원을 특정하는 데 결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항상 얼굴 전체를 가리는 풀페이스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체코의 법규상, 운전자의 신원을 명확히 식별할 수 없는 경우에는 처벌이 어렵다는 허점을 그는 교묘하게 이용했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경찰의 끈질긴 추적과 시민들의 제보가 쌓이면서, 마침내 운전자의 신원이 특정되고 체포가 이루어졌다. 체코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51세 남성으로 밝혀진 이 운전자는 최근 D4 고속도로에서 과속 단속 중이던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년간 경찰을 농락하며 도로 위를 질주했던 그의 5년간의 ‘광대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체포 당시 그는 경찰의 정지 명령에 즉각적으로 응하지 않고 항의하는 등 순순히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경찰서로 연행된 이후에도 자신의 신원 외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그에게 미등록 차량 운행, 일반 도로 주행이 불가한 경주용 차량 운행, 헤드라이트 등 필수 안전 장비 미비. 번호판 미부착, 과속 등 다수의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비록 운전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 수년간 누적된 위반 사례들과 시민들이 촬영한 수많은 증거 영상을 토대로 처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지 법규에 따르면, 그는 최대 수천 유로의 벌금과 함께 장기간의 운전 금지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상습적인 위반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차량 몰수 등의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 Police Czech Republic
F1 머신으로 위장한 GP2 머신이 일반 도로를 질주하는 비현실적인 광경은 많은 이들에게 스릴과 흥미를 안겨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운전자 자신은 물론, 도로 위 다른 모든 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한 극도로 위험하고 무책임한 불법 행위다. 5년간 이어진 미스터리 질주극은 마침내 막을 내렸고, 헬멧 뒤에 숨어 법규를 조롱하던 운전자는 이제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번 사건은 아무리 기상천외하고 흥미로운 일탈이라도, 그것이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면 결국에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자동차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며, 운전대를 잡는 행위에는 언제나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