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드라이버들은 일반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반사 신경과 담력을 지닌 '운전의 신'으로 불린다.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코너를 공략하고, 0.001초를 다투며 극한의 상황을 통제하는 그들에게 운전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적어도 통제된 서킷 위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완벽해 보이는 드라이버들이 정작 우리와 똑같은 일반 도로(공도) 위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믿기 힘든 사고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난무하는 공도는 F1 챔피언에게도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소개할 주인공은 F1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이버 중 한 명이자, 7회 월드 챔피언에 빛나는 루이스 해밀턴이다. 그는 서킷 위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주행을 보여주지만, 2015년 모나코의 새벽 거리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사고의 주인공이 된 차량은 평범한 슈퍼카가 아니었다. 해밀턴의 요청으로 파가니가 특별 제작한, 전 세계에 단 한 대뿐인 '파가니 존다 760 LH'였다. 그의 이니셜 'LH'가 붙은 이 보랏빛 괴물은 760마력의 V12 엔진에, 해밀턴의 취향을 반영해 '수동 변속기'를 얹은 그야말로 희귀하고도 까다로운 차였다. 가격은 당시 기준으로도 약 20억 원을 호가했다.
사건은 2015년 11월, 모나코의 새벽 3시 30분경 발생했다. 해밀턴은 이 귀한 차를 몰고 가다 주차되어 있던 차량 3대를 연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앞부분이 처참하게 망가졌다. 당시 팬들은 음주 운전을 의심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음주 반응은 없었다. 해밀턴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일주일 내내 파티를 즐기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 피로가 누적되어 운전 중 집중력을 잃었다."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도 쏟아지는 졸음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던 것이다. 챔피언의 체면을 구긴 이 사건은 "운전할 때는 컨디션 조절이 필수"라는 교훈을 남겼다. 참고로 이 비운의 차량은 이후 다른 수집가에게 팔렸으나, 2023년 영국 웨일스의 한 터널에서 또다시 대파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두 번째 주인공은 페라리의 에이스이자 '모나코의 왕자'로 불리는 샤를 르클레르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모나코의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공도 사고와는 거리가 멀 것 같았다. 하지만 2024년, 그는 가장 익숙한 곳에서 가장 민망한 사고를 냈다.
사고 장소는 모나코 그랑프리의 상징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코너 중 하나인 '페어몬트 헤어핀'. F1 경주 때도 가장 속도를 줄여야 하는 이 구간에서, 르클레르는 자신의 데일리 카인 '페라리 푸로산게'를 몰고 가다 앞서가던 차량의 뒤범퍼를 박아버렸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는데, 영상 속 르클레르의 속도는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었다. 초고속 주행도 아닌, 정체 구간 서행 중에 발생한 단순 접촉 사고였다. 영상 속 그는 앞차와의 거리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듯 보였다. 시속 300km로 칼같이 코너를 공략하던 그가, 시속 10km에서 앞차를 박는 모습은 운전에는 '방심'이 가장 큰 적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마지막은 현역은 아니지만, F1 팬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인 전 포스 인디아/자우버 드라이버 아드리안 수틸이다. 2020년 여름, 모나코 인근 도로에서 발생한 그의 사고는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박살 낸 차량은 단순한 맥라렌이 아니었다. 맥라렌 중에서도 하드코어 트랙 머신으로 꼽히는 '맥라렌 세나 LM'이었다.
수틸은 모나코의 좁은 도로를 주행하던 중 차량 제어력을 잃고 가로등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공개된 사진 속 세나 LM의 상태는 처참했다. 전면부 범퍼와 보닛, 서스펜션 등 탄소섬유로 이루어진 고가의 부품들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800마력이 넘는 후륜구동 괴물을 좁은 공도에서 다루는 것이 전직 F1 드라이버에게도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루이스 해밀턴, 샤를 르클레르, 아드리안 수틸. 이들은 모두 운전대 하나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최정상급 드라이버들이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가득하고, 집중력을 흩트리는 요소가 많은 공도 위에서는 그들 역시 한 명의 평범한 운전자일 뿐이었다.
이들의 사고는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운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이다. 아무리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피로하거나, 방심하거나, 혹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순간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