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느린 아이의 어린이집 첫 주 적응기
대학병원 소아재활의학과를 예약했다. 아동언어센터에 셀시 언어평가도 신청했다. 24개월 무렵으로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두 곳 모두 예약이 가능했다. 양쪽 모두에서 ‘조금 더 기다려주자’ 결과지를 받았다. 어린이집을 보내봐도 좋겠다 하신다. 두 곳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보내도 된다고요? 아니, 보내면 사회성에도 도움이 되고, 언어 자극도 받을 것 같다고요? 그동안 내가 본 소아과 선생님이 쓴 글에는 사회성 키운다고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라 하지 않으셨던가.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우리에겐 역사가 있다. 있음이와 나는 어린이집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었다. 작년 9월이었으니까 있음이가 19개월쯤 되던 시기였다. 그때는 엄마, 아빠 정도 말을 하던 차였다. 안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서 시도했는데 아이의 대성통곡을 마주하며, 아이를 놓아줄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나 자신 또한 발견했다. 2주간의 적응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올 3월에 맞춰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놓기는 했었다. 어린이집 3곳을 아이와 방문하고 상담을 받았다. 난 100점짜리, 완벽한 어린이집은 없다는 것을 안다. 시설도 좋고, 가깝고, 놀이에도 많이 신경 쓰고, 선생님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런 곳 말이다. 이번에 선택한 곳은 걸어서 15분 이상 걸리고 언덕길도 올라야 하며, 5명이 한 반이라 다소 좁아 보이는 공간이라 아쉬웠다. 하지만 단 하나만 만족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나와 아이가 정서적으로 마음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 단 한 가지였다.
언니는 유치원을 가고 아가는 어린이집에 다니자고 2월부터 생각날 때마다 얘기해 줬다. 어린이집 상담부터 오티까지 아이가 함께 가보더니 나쁜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면 장난감도 있고 선생님이 놀아주시기도 해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언니처럼 자기도 어딘가를 다닌다는 것에 신나 하는 것 같다.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선생님께서 30분 해보자 하셨다. 나는 지난번 경험으로 아이가 ‘어린이집은 엄마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아이가 아예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혼자 30분 있으면서 다른 아이들의 엄마가 한 두 분 와 계신 것을 보고 의기소침해했다고 하셨다. 내일은 엄마와 함께 1시간 있자고 하신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서있자 앉아 있어 주시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놀다가 엄마를 안전기지 삼아 다시 오게끔 한 곳에 앉아 있어 주시라 한다. 선생님이 엄마 지도를 잘하신다. 내가 있으니 나를 안전기지 삼아서 반경 1미터 안에서 논다. 멀리 가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의 경우 엄마 두고 탐험을 가지만 이 아인 사회적 민감성이 큰 아이다. 하지만 아기 유아차도 몰고, 과일 썰기로도 놀고 조금씩 어린이집 놀이 장난감에도 관심을 보이며 놀기 시작했다. 간식을 먹고 나서는 나와 더 놀다가 나가려고 해서 아쉬울 때 가자며 데리고 나왔다.
아이가 알아버렸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없다는 것을. 언니를 유치원에 내려주고 가는 등원길에서 설명을 더 해줬다. 미끄럼틀 다섯 번 타고, 과일 썰고, 간식 먹고 엄마랑 만나자고. 더 운다. 아 이게 아닌데. 싶던 차에 어린이집 문이 열리고 선생님께서 우는 아이를 안고 들어가셨다. 1시간이니까 괜찮을 거야 다시 만나서 실내 놀이터에서 찐하게 나랑 노는 시간을 가지면 되지 하며 나도 발걸음을 돌렸다.
눈 뜨자마자, 옷을 갈아입히고 아침을 먹이면 아이가 하는 레퍼토리가 생겼다.
“어린이집~ “
“응, 있음이 오늘 어린이집 가지~”
“엄마~! ”
“응 엄마랑 이따가 만나서 햄~~ 먹으러 가자!”
흐느낀다. 하지만 이내 진정하는 모습이다. 아이를 안고 문으로 향해 가는데 가까워질수록 꺼이꺼이 하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아이 스스로 진정하고 감정을 추스르는 느낌이다. 선생님께서는 엄마 가고 나면 잘 논다며 어린이집에서 제일 잘 지내는 아이라 하신다. 말로만 듣던 어린이집 에이스가 내 딸이라니!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바깥문의 좁은 틈 사이로 등원한 아이를 들여다본다. 출결을 위한 전자카드를 선생님과 손잡고 찍으러 간다. 근데 웃는다? 벌써 정을 붙였구나? 안도되면서도 이렇게 적응을 잘하는 심리적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싶기도 하다. 울면 안 되는 곳이란 생각을 한 것인가. 사회적 민감도가 큰 아이가 오히려 적응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싶다가도, 웃는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곳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거다 싶다. 놀다 보면 엄마와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파악했구나 싶다.
어린이집에서 논다고 일찍 일어나니 피곤하긴 한가 보다. 끝나고 간식을 조금 먹으면 나에게 기대어 잔다. 저녁시간에 키즈노트 사진을 같이 보았다. 요플레 먹는 사진, 케이크 가지고 노는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걸어보았다. 웃는다. 어라 어린이집에 대한 정서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나와 빠빠하는 그 순간, 약간 멍_하게 바라보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이제는 엄마가 아닌 그 안을 주목한다. 선생님과 미끄럼틀타자 하니 바로 들어간다.
낮잠을 권유하신다. 아이는 누워서 낮잠 자는 것을 거부하는 편이다. 바로 누우면 기절할 만큼 졸려야 누워서 잔다. 못 잘까 봐 좀 늦추고 싶기도 하다. 또 아이가 3시간 정도의 사회생활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양육조사서를 보신 선생님께서 “잠들기 어려워하면 제가 안아서 토닥여서 재울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 하신다. 와 이런 이야기 처음 듣는다.
감사한 인연 참 고맙다고 말씀드리니 이 마음이 1년 동안 잘 가도록, 조금이라도 제안하거나 불편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 하신다. 요구하라 하신다. 본인도 하겠단다. 이런 이야기 또한 처음 듣는다.
내가 처음 상담 전화했을 때 받았던 분이 본인이라 하시며 아이 이름도 기억해 놨는데 이렇게 같은 반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다 하신다. 있음이 이름이 입에 익어 다른 아이에게도 있음이라 부르신단다. 물론 나에게만 이렇게 대해주신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도록 그렇게 배려하시는 거라는 것을. 이런 분을 만나게 되다니!
있음아, 너 이 선생님 만나려고 멀리 돌아왔던 거구나?! 선생님 복이 있는 너의 첫 사회생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