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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어린 아티스트의 성장을 기대하며

아모르샘

by 뉴아티

나는 성격 검사 같은 것을 해 보면 꼭 예술가 기질이 있다고 나온다. 그러나 나는 예술이랑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자유로운 걸 좋아해서 그런 결과가 나오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어쩌면 내 안에 어린 아티스트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예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지금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한 줄이라도 써 보려고 하는 것을 보면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겁쟁이일지도 모르고 꿈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그림자 아티스트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 안에 아티스트가 있음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어 보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글도 쓰고 싶었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악기를 곁에 두고 치우지 못하고, 한국 무용이나 라틴댄스 스포츠 댄스 등 기회가 있으면 기웃거렸다. 책을 다 읽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독서 클럽에 가입하고, 고전 읽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 안에는 아티스트가 있어’라고 생각하다가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생각하고 있지 나만 그런가?’라고 하면서 또 주저한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도 다 그렇든 말든 내 생각만 하고 내 안에 아티스트를 키워나가고 싶다.

사실 나는 나를 소개할 때마다 자신이 없었고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특별히 잘 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부족한 것도 없었는데 늘 내가 소심하니까 엄마가 답답해하시며 ‘너 당당해도 된다’, ‘잘난 척 좀 해도 된다’라는 말씀을 나에게 하시곤 했다. 나는 그런 게 또 창피했다. 나는 왜 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자신감이 없었을까? 내 안의 검열관이, 또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들이 늘 나를 신경 쓰게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달라지려고 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비웃으려면 비웃으라고 나를 당당히 드러내고 내 안의 창조성을 찾아 잘 키우기 위해 물도 주고 영양도 공급해 줄 것이다. 창조성을 키우기 위해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아티스트를 중심 무대에 올려놓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용기’라는 말을 되새기며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 능력이 내 안에 있다고 믿어 보려고 한다.

<아티스트 웨이> 책에 이런 글이 있다. ‘그림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창조성의 빛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그림자 아티스트가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드럽고 세심하게 내면의 아티스트라는 아이를 길러야 한다. 창조는 놀이이다. 그러나 그림자 아티스트에게는 자신을 놀게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 맞는 말이다. 창조는 놀이인데 놀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늘 진지하게 실용적인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세심하게 내면의 아티스트를 길러낼 놀이터를 마련해 주어야겠다.

사실 이렇게 다짐하면서도 내 안의 창조성을 언제 얼마나 찾아 키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러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어도 나이가 드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산책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좋은 사람들 만나서 아티스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렇게 마음을 다시 고쳐먹으니 내 안의 어린 아티스트는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설레고 기대된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잘 길러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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