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하는 일 vs 내가 하고 싶은 일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이직 전쟁에서도 유효한 구절이다. ‘지피’는 내가 지원할 회사에서 채용하고자 하는 직원의 모습과 조건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고, ‘지기’는 그 모습과 조건에 내가 얼마나 부합하는지 강점은 부각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직을 결심하게 되는 다양한 이유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가 제일 중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본인의 경력을 완벽히 리셋하고 신입으로 시작하지 않는 이상, 업무와 관련된 경력이 전혀 없는 지원자를 경력사원으로 채용하는 회사는 매우 드물다.
나도 이직하면서 여전히 고민하고 좌절을 겪는 부분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하는 일’ 사이의 간극이고 그것을 좁혀 나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노하우가 쌓였지만, 첫 번째 이직을 준비할 당시에는 그 간극이 그랜드캐니언 협곡보다 커서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삼성에서 네트워크 엔지니어와 기술 영업 업무를 담당하면서 한 분야의 전문가로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지만, 반면에 네트워크 이외의 IT 솔루션들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직 할 수 있는 회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지난한 과정에 다양한 시도를 하며 수많은 실패 끝에 한 번의 성공을 만들어냈고, 그 소중한 성공 경험을 발판으로 여러 외국계 기업을 거치며 ‘내가 잘하는 일’의 영역을 확장하고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다가가고 있다.
숨겨진 연관성을 찾아 퍼즐 맞추기
내 경력의 두 번째 회사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라는 서버, 스토리지와 같은 IT 하드웨어 업체였고 시스템 엔지니어와 기술 영업을 담당했다. IT 영역에서 서버/스토리지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몸에 비유해 말하자면 서버/스토리지는 두뇌, 네트워크는 산소와 영양분을 우리 온몸에 전달하는 혈관이라고 볼 수 있다. IT 분야는 각 영역의 전문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서버/스토리지 관련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내가 합격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는데,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근무 중인 지인이 ‘직원 추천(Referral)’을 해준 덕분에 가까스로 인터뷰 기회는 잡을 수 있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직원 추천은 큰 이점이기 때문에 평소 인맥과 평판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세운 나의 전략은 삼성에서 ‘내가 잘해왔던 일’과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해야 할 일’의 연관성을 찾아서 그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저는 네트워크 전문가이지만 서버/스토리지로 영역을 확장해서 IT 분야의 슈퍼 제너럴리스트(Super Generalist)가 되고 싶어 지원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저는 기술 영업을 담당하면서 ○○, ◇◇와 같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구축을 완료한 경험이 있어서, 귀사에서 채용 중인 기술 영업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귀사에 네트워크 전문가가 있다면 서버/스토리지에 국한되지 않고 IT 전반을 아우르는 대화를 고객과 나누면서 그들의 과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로 풀어냈다.
물론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경쟁사의 제품 분석 및 시장조사를 하면서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의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도 부지런히 했지만, 합격한 후 면접에 들어왔던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는 ‘우리 회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상했다’였고 합격의 열쇠는 ‘내가 잘하는 부분을 통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도메인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실낱같은 연관성이 있다면 그 접점을 시작으로 본인의 강점 중 지원한 회사에는 결핍된 영역, 즉 본인만이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을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꾸며 나가야 한다. 어려운 작업이고 탈락의 고배도 마시겠지만, 이직의 뜻이 굳건하다면 반드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쌓아야 할 스킬은 직무기술서에 있다
‘내가 가고 싶은 회사’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다가가기 위해 어떠한 역량과 스킬을 쌓아야 하는지 정보가 필요할 때 나는 관심 있는 회사의 채용 사이트를 확인하거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링크드인(LinkedIn)에서 회사명/직무명을 검색한다. 채용 담당자(Recruiter)와 부서장(Hiring Manager)이 직무기술서에 ‘우리 회사에 오시면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 업무를 수행하려면 기본적으로 이 정도 수준을 경력과 역량은 갖추어야 합니다’에 해당하는 정보를 꼼꼼하고 정확하게 기술해두었기 때문에 내가 목표하는 회사와 직무에 합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로드맵을 제공해준다.
직무기술서에 있는 요건(Qualifications) 중에 갖추지 못한 부분은 사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TFT(Task Force Team)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업무 포트폴리오를 추가하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다. 회사 내 업무에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관련 교육을 수강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력서를 채우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니, 교육이 필요하다면 꼭 결과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과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직무기술서에 있는 수많은 요건을 읽어 내려가면서 ‘제길, 이번 생에는 글렀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예상되는데, 최상위에 있는 소수 능력자를 제외하면 이직을 준비하는 대부분이 겪게 되는 과정이다. 우리가 이상형을 이야기할 때 ‘수려한 용모에 성격 좋고 재력까지 겸비한’ 비현실적인 페르소나(Persona)를 머릿속에 떠올리듯 채용 담당자는 모든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는 슈퍼 직장인을 기대하며 직무기술서를 기술한다. 예전보다는 조금씩 요건들이 현실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요즘 같으면 우리는 입사 못 했겠네’라는 말을 가끔 주고받는다. 그러니 직무기술서의 요건들에 주눅 들지 말고 나에게 준비가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길라잡이로 삼길 바란다.
회사는 많고 포지션은 다양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있듯 세상에는 수많은 회사와 포지션이 존재한다. 직장인으로서 경력 관리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잘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갭(Gap)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 간극을 이을 수 있는 연결점을 찾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 또한 ‘내가 가고 싶은 회사의 포지션’에서 요구하는 스펙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그 회사의 채용 사이트나 링크드인에 접속해서 상세 요구조건을 파악하고 교육과 자격증 취득을 통해 필요조건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방향을 잡기조차 어렵고 그곳을 향해 준비하면서도 확신하기 어려워서 ‘내가 맞게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반복하게 되는데, 옳게 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그 또한 얻게 되는 교훈이 있으니 나쁜 것은 없다. 가장 나쁜 것은 고민만 하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충만한 의지로 이직 준비를 시작하지만, 쉽사리 끝이 보이지 않는 과정이기 때문에 지치고 가끔 넣어보는 지원서에 불합격 메일을 받으면 자신감이 떨어져 현재 직장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발로 내가 가고 싶은 포지션에 어울리는 스킬을 쌓아가는 축적의 시간이고, 이직에 성공한 순간 늘어난 연봉과 더불어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