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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장인 Aug 08. 2023

평판은 ‘보이지 않는 이력서’다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어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면 부서장이나 주위 동료들로부터 ‘주변에 추천할 만한 괜찮은 사람 없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기업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업무 밀도와 성과 압박은 높지만 직원 수는 적기 때문에 내공이 깊은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부서장이 직접 발로 뛰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또한, 직원 입장에서도 추천인이 채용되면 일정액을 보너스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직원 추천 프로그램(Referral Program)이 더욱 활성화되어 있다.


중요 포인트는 내가 ‘추천할 만한 괜찮은 사람’이어야 경쟁자에 비해 빠르게 기회를 잡고 합격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곧, 만일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변인들이 흔쾌히 추천할 만큼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외국계 기업은 상시 채용이 보편적이라, 평소에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이직 의사를 밝혀두는 일도 전략적으로 매우 필요하다. 중요 포인트는 2가지다. 자신이 ‘추천받을 만한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그리고 평소 주변인에게 ‘외국계 기업으로의 이직 의사를 밝혀둘 것’. 이 2가지가 선행되어야 경쟁자에 비해 빠르게 기회를 잡고 합격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단 하루의 인연에서 비롯된 나의 이직

나의 외국계 기업으로의 첫 이직은 삼성에서 만난 1년 후배 H의 추천 덕분이었다. H와는 서로 다른 부서여서 마주칠 기회조차 없다가 각 팀 막내들이 차출되어 만들어진 봉사 활동에서 우연히 한 조가 되어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캐릭터를 가진 친구였는데,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고 기회가 되면 그 회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봉사 활동 이후에는 딱히 업무를 함께 할 일이 없어서 가끔 사무실에서 마주치면 눈인사 정도 주고받았는데, 우리 팀 후배 L(H와 L은 같은 고향 친구 사이)을 통해 삼성을 그만두고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로 이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간 H가 그 회사로 가고 싶다고 말했기에 나는 ‘그렇구나, 잘 되었네’ 하며 속으로 H의 이직을 축하해주는 정도로 넘겼다.


내가 H를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앞에서 이야기한 ‘사원 3년 차의 고과 면담’ 이후였다.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정당한 고가를 못 받은 일 때문에 회사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나는 이직을 결심하고 여러 회사를 알아보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후배 L과 술자리를 하던 어느 날 우연히 H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나는 다음 날 바로 H에게 연락했다. 때마침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경력직을 채용하는 시즌이라는 낭보를 듣고는 바로 준비해둔 이력서를 전달하여 직원 추천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성격인 H는 단순히 추천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세 차례에 걸친 인터뷰에 들어오는 분들이 누구이고 어떠한 성향인지 등 여러 정보를 매 라운드를 통과할 때마다 제공해주었고, 내가 외국계에 첫발을 딛는 데 일등 공신이 되어주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하루 동안 봉사 활동을 함께하면서 느낀 ‘나에 대한 기억’이 ‘유쾌하고 자상한 모습’이어서 직원 추천을 하고 도움도 주게 되었다고 한다.  

        

느슨한 연결 고리의 힘 

‘느슨한 연결 고리의 힘(The strength of week ties)’은 미국 스탠퍼드 사회학 교수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S. Granovetter)가 발표한 논문의 제목으로, 가족, 친한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강한 연결)보다는 친하지는 않지만, 그저 알고 지내는 사람들(약한 연결)에게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는 내용이다.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나의 주변인과는 다른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 기회, 판단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인데, 실제로 그라노베터 교수는 이직한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새로운 직장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실증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 27.8%가 느슨한 관계(Week Ties)를 통해 직장을 구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총 6번의 이직을 했고, 그중 2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직 중인 직원 추천을 통해 이력서를 접수해서 이직에 성공했다. 나를 ‘추천’해준 분들에게 매우 감사하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은 추천해준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1년에 한두 번 정도 메신저나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의 약한 유대 관계였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런 추천이 가능했던 이유는 외국계에 근무하는 직원들 간에는 ‘누가 어디에 있더라’ 하는 네트워크가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력한 네트워크 덕분에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에는 직접 또는 한 다리만 걸치면 아는 사람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1년에 한두 번 정도만 안부를 묻는 사이인데, 오랜만에 연락해서 부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정도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외국계 이직에 있어서 ‘느슨한 연결 고리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체감했기에 이 네트워크를 굳게 믿게 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만약 주변 지인 중에 사돈의 팔촌까지 눈을 씻고 찾아도 외국계에 근무하는 사람이 없다면, 비즈니스로 맺어진 외국계 업체 직원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느슨한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분명히 있다. 약한 연결 고리로 표현되는 ‘인맥’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서 불합격을 합격으로 만드는 마법을 발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력서 중에 ‘직원 추천’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채용 담당자나 부서장이 한 번 더 읽어보고 고려하게 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 점만으로도 이직 시장에서는 충분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고 생각한다.          


느슨한 네트워크 형성과 확장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외국계 기업과 파트너로 일하게 되었을 때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서 적극적으로 그 인연을 활용해야 한다. 업무로 얽힌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면 업계 동향과 외국계 회사들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회사 간 파트너십을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상하 관계로 이해하고 무리한 요청이나 무례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 언행은 인격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니 올바른 비즈니스 매너를 갖추고 파트너사 직원들을 상대하는 것이 좋은 평판을 만들고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또한 외국계 기업은 제공하는 솔루션과 서비스에 대한 기술적 전문성은 갖고 있으나 현장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부족하므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전문성과 역량을 보여준다면 외국계 기업 입장에서 채용하고 싶은 후보 명단에 오를 수 있다. 실제 내 주변에도 외국계 기업들과 협업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직원 추천’을 포함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직한 경우가 드물지 않고, 그분들의 공통점은 함께 일하는 외국계 기업 직원과 원활한 업무 진행(이분 실력 있고 일 잘하네)과 더불어 점심 식사 또는 간단한 커피타임을 통해 친분(이분 사람 괜찮네)을 쌓았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피천득, ‘인연’     

피천득 시인이 쓴 인연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외국계 기업으로의 이직을 목표로 하는 모든 사람이 업무를 하며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올렸으면 한다.

          

평판은 이직의 시작이자 종착역이다

인적 네트워크는 개인의 능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이고, 이직의 시기가 왔을 때 그간 다져 둔 인맥을 통해서 원하는 회사로 이직을 할 수도 있다. 또한 기업에서 평판 조회는 경력자 채용에서 면접 다음으로 중요한 선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스펙은 혼자의 힘으로 만들 수 있지만 인적 네트워크와 평판은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다지고 쌓아 올린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직 시 ‘그 사람 어때?’ 이 말 한마디로 채용이 결정되고 연봉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평상시에 직장에서 그리고 함께 일하는 파트너 회사와의 관계에서 평판 관리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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