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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장인 Mar 23. 2023

이력서엔 항상 ‘현재’를 담아라

나 자신을 알라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세월이 언제 흘러가는지 모르는 때가 많다.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느덧 한 달, 1년이 훌쩍 지나가곤 한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3-4년 차 정도가 되면 첫 이직의 의지가 솔솔 솟아나기 시작한다. 주된 계기는 동료가 이직을 하거나 업무 고과가 자신이 기대에 못 미칠 때, 또는 맡은 업무가 자신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때 등 심경의 변화가 생기면서다.

소위 ‘직장인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취업정보사이트를 기웃기웃대다가 컴퓨터 하드에 잠자고 있던 이력서 파일을 열어 보며 조금은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이력서를 쓰려니 그동안 해온 일들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굉장히 막막하고 심지어는 ‘고생은 많이 한 것 같은데, 특별히 드러내서 쓸 만한 게 없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껏 무얼 하고 살았나 하는 ‘현타’가 오고 굉장히 당황스러운 심정에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력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자연인이 아닌 직장인으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취업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스스로 측정해보는 과정이다. 나에게 이직에 대해 자문을 구했던 많은 선후배 그리고 동료 중 ‘이력서 써서 보내주세요’라는 요청에 행동으로 옮겼던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이력서를 쓰던 중에 ‘이런 나라도 월급을 꼬박꼬박 주는 회사라니… 고맙네…’ 하면서 갑자기 회사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음주 도중 고해성사를 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이력서는 그 자체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매우 유용한 도구다. 따라서 굳이 이직을 결심하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이력서를 작성해보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다. 더 나아가 이미 이직을 결심하고 완성된 이력서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남들보다는 한 걸음 앞서가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분노는 나의 힘

나는 사회생활을 삼성에서 시작했고 담당 직무는 네트워크 아키텍트와 기술 영업이었다. 같은 건물에 있는 외국계 회사 직원들과 마주칠 때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속 파트장님이 배울 점이 많은 분이셨고 중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셔서 별다른 고민없이 3년이 흘러갔다. 특별한 이슈 없이 나름 인정받으며 순항 중이던 나는 사원 3년 차를 마감하는 12월에 암초를 만났다. 팀장님과 고과 면담에서 납득하기 힘든 평가와 불합리한 사유를 들은 그 순간, ‘이직이 아니면 미래가 없다’는 결심을 하고 처음으로 경력직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당시에는 팀장님이 너무나 미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경력에 불씨를 당겨준 귀인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상사로부터 불합리한 지시를 받거나 참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당시 그 화풀이를 알코올로 하는 대신 키보드에 쏟아부었다. 이직을 위한 한 장의 완성된 이력서를 만들었고 그것이 외국계 경력의 시작점이 되었다. ‘나는 이런 경험과 지식을 보유한 상품입니다’라는 팸플릿(이력서)을 준비하면서 주변에 경험 있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구하고 시장에 뿌려서 반응을 기다리는 첫 번째 도전에는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했다. 운 좋게도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에 실망해 질풍노도의 시기에 빠졌던 터라, 나의 외국계 기업을 향한 맹목적인 추앙은 상상을 초월한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첫 번째 이직이 확정되기까지 무아지경으로 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드러내기에 조금은 창피한 날것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회사는 이래서 안 돼…’, ‘내가 여기 아니면 다닐 데 없나…’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대신에, 그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에너지로 활용하여 한 장의 이력서를 완성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앞서 이야기한 동료처럼 자아성찰을 통해 회사와 사랑에 빠져 남들보다 빨리 중간 관리자로 승진한 케이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나처럼 외국계 회사라는 새로운 경로로 들어설 수도 있다



이력서는 연대기가 아니라 ‘나’라는 상품의 홍보 전단지이다

초등학교 때 숙제를 하기 위해 겨우겨우 썼던 일기를 기억하는가? “오늘은 영이와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먹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놀았다. 기분이 참 좋았다”처럼 그날 있었던 일과 감정을 기술했지만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헌데,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읽고 나서 바로 덮어버리게 되는 이력서의 구조가 딱 그러하다. 뭔가 굉장히 많은 업무와 프로젝트가 이력서에 빼곡히 쓰여 있는데 지원자가 딱 부러지게 무얼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우리 회사에 오면 어떤 부분을 기여할 수 있을지 느껴지지가 않는다.

반면에 잘 쓴 이력서는 유명한 ‘Shut up and take my money!’ 짤이 생각날 정도로 잘 만들어진 홍보 전단지 같다. 채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알고 싶은 정보들이 곳곳에 키워드와 수치로 박혀 있어서 지원자가 과거에 어떤 일을 통해 어느 수준의 성과를 냈던 사람인지, 우리 회사에 오면 어떻게 일할 수 있을지 연상할 수 있다. 


경력직 이력서를 처음 작성한다면, 최근에 진행했던 업무부터 시간의 역순으로 각각을 불릿포인트로 나열한 후에 각 업무에서 내가 달성한 업적[영업이라면 매출액, 마케팅이라면 고객 유입증가율 등 각 영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성과지표(KPI)]을 적어보자. 또한, 그 업무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내가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도 최대한 자세하게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좋은 이력서를 작성하기 위한 그리고 동시에 인터뷰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재료들을 준비한 것이고 이제는 그 내용들을 간략하고 임팩트있게 정리해서 내 이력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람 꼭 만나보고 싶네!’라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면 된다 (이 부분은 전술과 기법이 필요하므로, 자세한 내용은 다른 챕터에서 상세히 기술하겠다).


 

인생은 타이밍! 이직도 타이밍! 준비한 자만이 잡을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채용공고에 마감일을 정해두고 그때까지 접수된 이력서를 일괄 취합하여 리뷰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국계 기업은 그에 비해 사이클이 짧아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원자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인터뷰를 바로 진행하고 최종 인터뷰를 통과하는 사람이 있으면 프로세스 마감일과 무관하게 채용 프로세스를 종료한다. 나도 꼭 가고 싶은 회사에 딱 마음에 드는 포지션이 있어서 지원했지만 이미 최종 인터뷰(Fianl Round) 중이거나 연봉 협상 중인 지원자가 있어서 인터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회사와 포지션을 발견하면 즉시 지원할 수 있도록 상시로 업데이트된 이력서가 필요하다. 


좋은 기회는 불쑥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처럼, 좋은 회사와 포지션은 나의 경쟁자들 또한 여러 경로를 통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지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경쟁력이다. 엄청난 필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이력서를 작성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있다면 지금 당장 컴퓨터를 켜고 가장 최근의 업무 성과로 업데이트된 이력서를 완성하길 바란다.


 

업데이트 된 이력서는, 언제든 목표물을 잡을 수 있는 나만의 무기

이직 로드의 출발선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 나 자신을 알고, 나의 직무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의 장점과 나에게 부족한 점을 아는 것, 그것이 출발선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것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은 외국계 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가리지 않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지기(知己)의 과정을 통해 깨달은 나만의 경쟁력을 글로 정리하는 작업이 이력서 작성이다. 냉엄한 이직 시장에서 나의 이름과 경험이 적힌 이력서가 지하철 주변에 버려진 찌라시처럼 가볍고 하찮게 취급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포지션을 관리하고 각 포지션마다 수십장의 이력서를 받는 채용 담당자의 관점에서 내가 제출한 이력서가 시간을 내어 꼼꼼하게 검토되고 Hiring Manager에게 전달되어 인터뷰로 연결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표적이 나타나면 즉시 발사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된 이력서를 항상 장전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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