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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장인 Aug 07. 2023

외국계 기업, 이래서 옮긴다

나에게 ‘외국계 기업’이란?

까마득한 기억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아버지를 주말에 따라가, 그 당시에 생소했던 컴퓨터도 만져보고 휴게실에 비치된 탁구대에서 같이 운동하면서 막연히 ‘아빠 회사 참 좋구나’라는 생각했었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회사에서 주최하는 연말 부부 동반 파티에서 어머니가 뽑은 제주도 여행권 덕분에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봤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나는 외국계 회사에 대해 친근한 느낌이 있었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도 시작은 국내 기업이지만 외국계 회사로 꼭 옮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영어 커뮤니케이션, 해외 출장 등 소위 ‘좀 있어 보이는’ 생활이 외국계 회사에 대한 대표적인 이미지인데, 아버지 덕분에 국내 기업과는 차원이 다른 외국계만의 냉정함을 보고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입사했다가 실망하는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었다.


내가 왜 외국계 기업을 선택했고 왜 계속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지는 이어지는 글 전반에 걸쳐 다루겠지만,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요소들에 대해 환상과 현실을 비교하며 설명해보고자 한다.

          



1. 외국계 기업은 연봉이 높다?

아니다. 외국계는 성과 지향적이다. 대졸 신입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국계 기업보다 국내 대기업의 연봉이 높은 편이다. 다만 국내 대기업은 입사 후 연봉 상승이 높지 않지만 외국계 기업은 초봉이 낮은 대신 개인의 역량과 성과에 따라 인상률이 높아질 수 있다. 경력직의 경우, 직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계약 연봉에서 개인과 회사의 실적에 연동되는 인센티브의 비율이 높으므로 [예를 들면 계약 연봉(100%) = 기본급(50%) +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50%)] 매출을 초과 달성하는 경우 계약 연봉보다 꽤 높은 금액을 실수령액으로 가져갈 수 있다.          


2. 외국계 기업은 워라밸이 좋다? 

아니다. 외국계는 자율성이 높다. 부서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9시에 출근해서 책상을 지키고 있다가 6시에 눈치 보고 퇴근하는 것이 아닌 각자 본인 업무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일도 휴식도 열심히 하는 환경(Work Hard, Play Hard)으로, 매주 진척도를 보고하며 기한 내 업무를 완수해야 하므로 자발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문화이다. 해외에 있는 동료들과 협업이 필요할 때는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콘퍼런스 콜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3. 외국계 기업은 조직문화가 수평적이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외국계 기업의 특성상 국내 기업에 비해 수평적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국내 대기업보다 소규모 조직이다 보니 보고 체계도 단순한 편이다. 권한이 많이 주어지고 의견 피력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신 주어지는 업무의 책임도 더 크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도 직급 폐지를 포함하여 기업문화가 변화하고 있고, 외국계 기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갖는 스타트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4. 외국계 기업은 영어에 능통해야 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비즈니스 수준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 능력을 갖춰야 하지만 업무에서 활용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본사와 소통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때는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엄청난 경쟁력이 된다.

   

4. 외국계 기업은 이직이 활발하다?

그렇다. 외국계 기업은 신입 공채보다는 경력직 채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같은 산업 및 업종에 있는 회사 직원 간 네트워크 및 교류가 활발하다. 이를 통해 ‘A 회사에 X 포지션이 새로 열렸다’와 같은 소식도 빠르게 유통되기 때문에 이직을 통해 몸값을 높이거나 승진 기회로 이어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경쟁사로 이직해서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도 매우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일잘러인가 일못러인가

외국계 기업에 대한 수식어들은 대부분 현실을 왜곡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많다. 내가 15년가량 다양한 외국계 기업을 거치며 느낀 외국계 회사의 장점은 성과에 대한 보상이다. 예전보다는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은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와 일못러(일을 못 하는 사람)의 차이가 크지 않은 온정주의적 보상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에 반해 외국계 기업은 실적에 따른 당근과 채찍이 확실하므로 본인 업무에 오너십(Ownership)과 열정을 갖고 일하고자 하는 프로 일잘러에게 적합한 환경이다. 반대로 말하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굉장한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

직장인으로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주체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상황을 즐기고, 그에 관한 결과를 온전히 스스로 누리거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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