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경 Apr 02. 2023

챗봇 GPT 시대에 더욱 빛날 인성

[김유경의 책씻이] 잃어버린 도시 《원청》(위화, 푸른숲, 2022)

《원청》은 두 이야기가 얽혀 있다. 각각의 주인공은 린샹푸와 샤오메이다. 두 사람의 짧은 인연이 난세와 자연재해 등 극적인 강렬함을 통해 이어질 듯하다 끊어진다. 린샹푸와 샤오메이와 아창의 삼각관계를 린샹푸만 모른 채. 이래저래 안타까우나, 따뜻한 인성과 무상한 인생이 다양한 에피소드로써 변주되며 공명하는 ‘원청교향곡’이다. 챗봇 GPT 시대에 더욱 빛날 인성을 반복·강조하는.   

  

타지에서 딸을 안고 다니며 젖동냥하는 남자 린샹푸. 그의 굴곡진 삶을 따라가다 내 눈시울을 적신 아름다운 인간 고리 셋을 소개하고프다. 첫 번째는 린샹푸가 인간 향기 나는 천융량과 리메이롄 부부를 알게 된 장면이다. 두 번째는 린샹푸를 찾아온 집사 톈다와 만나는 장면이다. 세 번째는 리메이녜가 토비 인질로 리바이자 대신 천야오우를 보낸 걸 털어놓는 장면이다.      



  붉게 타오르는 숯불과 어떤 상황에서든 잘 적응하는 남자, 안분지족을 아는 여자 그리고 세상에 온 지 얼마 안 된 두 사내아이가 있었다. 린샹푸는 걸상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쓸쓸하게 지냈기 때문에 온기를 더욱 절절히 느꼈다. 리메이롄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건넸을 때 그릇을 잡은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엄동설한에 죽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 일부를 그에게 나눠준 거였다. 린샹푸는 그들의 큰아들을 무릎에 앉힌 뒤 입으로 죽을 불어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먹이고 자신은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 천융량과 리메이롄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말없이 자기 몫의 죽을 천천히 먹었다. 하얀 죽이 천융량의 수염에 묻었다. 린샹푸는 천융량의 큰아들을 다 먹인 뒤 일어나 작별을 고하며 엽전 한 닢이 아니라 두 닢을 조용히 걸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갑자기 부끄러워져 예전처럼 오른손을 뻗어 엽전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3쪽)     


  린샹푸는 톈다라는 걸 알아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부축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만나지 못한 2년 동안 마흔여 살의 톈다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졌다. 

  린샹푸가 물었다. “어떻게 왔나?”

  톈다가 오열했다. “초봄에 편지를 받자마자 내려왔습니다.”

  톈다가 품에서 붉은 보자기를 꺼내 두 손을 벌벌 떨며 린샹푸에게 건넸다. “도련님, 집문서입니다. 이걸 가져왔습니다.”

  린샹푸는 푸른 보자기를 받아서 펼쳤다. 집문서에 적힌 할아버지 이름을 보자 만감이 교차했다. 톈다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또 꺼내 건넸다. 린샹푸가 열어보니 작은 금괴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톈다가 말했다.

  “2년 동안 수확한 결과입니다. 성안 전장에서 참조기로 바꿔 가져왔습니다.”

  린샹푸는 옷차림이 남루한 톈다를 보며 감동에 휩싸였다. (… 중략 …) 문 앞에 이르렀을 때 톈다가 문지방에 앉더니 낡은 짚신을 벗고 가슴 앞에서 새 짚신을 내렸다. 그러고는 눈물을 닦은 뒤 웃으며, 집을 나설 때 짚신 다섯 켤레를 준비했는데 네 켤레가 닳고 마지막 한 켤레가 남았다고 말했다. 왠지 마지막 짚신은 함부로 신을 수가 없었다면서 이제 도련님을 만났으니 신어도 되겠다고 덧붙였다. (144쪽)    

  

  리메이롄은 길가에 서서 하염없이 저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린샹푸와 천융량이 길모퉁이에서 나타나고 린바이자가 천융량 품에서 내려와 자신한테 달려오는 것을 보고서야 리메이롄은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중략 …) 그녀는 웃으며 자기가 너무 좋아서 정신이 나갔다고 한 뒤 옷을 가지러 옆방으로 갔다. 솜저고리를 가져와 린바이자에게 입히고 단추를 채울 때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천융량과 린샹푸에게 자신이 천야오우더러 린바이자 대신 가라고 했다며, 린바이자가 토비한테 ‘풀무질’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그랬다고, 아들은 둘이지만 딸은 하나라 천야오우를 보냈다고 말했다. 리메이롄의 눈물에 린샹푸가 괴로워하며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 천융량이 따라가 린샹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집사람 말이 맞아요. 아들은 둘이지만 딸은 하나뿐이잖아요.” (169~170쪽)     


     

린샹푸의 딸 이름은 “100여 집의 젖을 먹고 자라서 린바이자”다. 샤오메이가 임신하고서 떠났다가 돌아와 낳은 후 다시 떠나서다. “난세의 전기(傳奇)적 이야기를 다룬 《원청》은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샤오메이를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한 린샹푸에게 아창이 엉겁결에 둘러댄 지명 원청은 지금 여기에는 없는 ‘잃어버린 도시’다.   

  

그런 의미에서 찾았으나 찾지 못한 애달픈 사랑을 간직한 가슴에는 너나없이 원청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건 학교 기숙사에 있는 린바이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린샹푸와 천양융·리메이롄 부부 그리고 천야오우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시진은, 린샹푸의 죽음으로 인해 이미 추억 속에서나 건재한 데다 난세여서 갈 수도 없는 먼 곳이기에 잃어버린 도시와 진배없다.   

   

그러나 잃어버린 도시 원청은 사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무상하지만, 챗봇 GPT 시대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 시대에도 인간의 온기로써 세상의 냉기를 극복하는 원청교향곡은 버전을 달리하며 울려 퍼졌고, 퍼지고 있고, 퍼질 테니까. 통시적으로 선한 인간 유형과 그와 맞먹는 인간 고리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 작가 위화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작가의 이전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청춘열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