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 삶의 레이더입니다

[김유경의 오늘] 먹을거리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by 김유경

난 먹는 걸 좋아한다. 세끼를 꼭 챙기면서도 참참이 군것질한다. 여름철 내 군입정질 최애 식품은 옥수수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다섯 자루를 먹어 치우기도 한다. 옥수수를 끔찍이 좋아했다는 마야인이 내 전생이었나 헤아릴 정도다. 사실 내 먹을거리는 그런 미각 범위를 넘어선다. 안이비신의(眼耳鼻身意)의 허기가 설(舌)에 못지않다. 누군가에게는 생뚱맞은 얘기겠지만.


내 생각에 몸을 구성하는 피와 살, 그리고 뼈의 질은 입에 넣는 식재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맘으로 먹고 생각하고 움직이느냐가 체내 화학작용과 에너지 변환에 영향을 준다고 여긴다. 그러니까 인간의 ‘안이비설신(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이 어떤 ‘의(의식)'와 섞이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 건강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몸과 정신은 하나가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게 내 몸철학이다.


특히 나는 편식을 피하려 수시로 먹을거리 탐사에 공들인다. 어쩌면 그렇게 기력을 쓰느라 줄곧 먹는데도 말라깽이지 싶다. 어쨌거나 상대를 제대로 알려면, 그가 뭘 먹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그건 반대로 나를 들키지 않으려면, 내 먹을거리가 들통 나면 안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뉴욕의 몇 지역학교를 방문한 경험이 그 주장을 편든다.


당시 뉴욕의 몇 생태계가 며칠 머문 내 눈에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식으로 치면, 동 단위 생태계였다. 동네 간 빈부차가 거리를 나다니는 사람들의 몸피와 표정 차이로, 쇼핑몰의 마네킹 사이즈로 확연히 드러났다. 삶의 조건이 다르면, ‘안이비설신의’의 콘텐츠가 바뀐다는 객관적 증거다. 그 결과 계층별 마케팅 전략이 차별화되고, 타인지향 세태의 구분짓기가 뚜렷해진다.


당시 가난한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의’를 변화시키는 교육을 통해 실상이 달라지는 경과보고를 접한 건 다행이었다. 누구든 먹을거리 앞에서 일단 소비자지만, 어떤 소비자가 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안겨주었기에. 그러니까 현명한 소비자는 좋은 먹을거리에 접속하기 위해 우선 바르게 사유하려 애써야 한다. 내가 살림의 레이더망을 구축한 이유다.


여기서 레이더는 내 생태계 순화를 도와주는 조직체나 인물이다. 건강한 식재료를 확보해 보급하는 한00 같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 균형 잡힌 현실 인식이 돋보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이완배 기자의 경제의 속살', 스트레스와 거리 먼 마음을 향하게 하는 '종범 스님의 법문' 등이 대표적인 내 레이더 사양이다. 금주에는 책읽기로 만난 생생한 버지니아 울프가 보태진다.


Lc1NQnz4VeC(종범 스님 2).jpg

위 인물들의 공통점은 세계의 실상을 파악해 공유하려는 성실한 실천력이다. 물론 내 먹을거리는 그들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들마다의 특유한 향기다. 그 중 일흔 넘은 종범 스님에게서는 범부 친화적인 도인의 향기(道香)가 개구쟁이 미소에 실려 맡아진다. 무슨 경을 가르치든(敎) 삼세(三世, 과거・현재・미래)와 양변(있다・없다)이 없는 가리킴(선,禪)을 넌지시 보게 하는.


내 레이더의 업로드나 사양 교체는 언제든 가능하다. 계획적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이루어진다. 그 인연 과정에서 내 몫은 분명하다. 레이더가 감지한 게 무엇이든 순간순간 겁내지 않기다. 식욕이 탐욕으로 변환되지 않도록. 그걸 위해 나 혼자 하는 놀이가 있다. 열심히 보고 듣되 집착하지 않는 연습이다. 인식은 하되 근심과 걱정을 안기는 생각에는 빠지지 말자다. 그러자니 연습생에게 심심할 틈은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그를 광김복동이라 부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