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책씻이] <0영ZERO零> (김사과 소설, 작가정신, 2019
<0영ZERO零>은 김사과의 신간 소설이다. 절친이 좋아하는 작가여서 잠시 선 채로 몇 장을 넘긴다. 제법 구미가 당긴다. 첫장부터 연인 간 이별 장면이 예사롭지 않게 펼쳐진다. 이별 당하는 여성 화자는 표정(태도) 코스프레플레이어가 되어 고별사를 늘어놓는 상대의 인격을 암암리에 살해하고 있다. 그 악의적 태도가 표제 ‘0영ZERO零’이 뜻한 바를 얼추잡게 한다. 관계재(關係財) 바닥으로.
어쨌거나 결론을 보류하고 내처 읽는다. 그러다가 약육강식의 버전업이라 할 “식인종”과 마주한다. 여기서 식인은, 표적이 된 상대를 위하는 척, 좋아하는 척하면서 망가뜨려 자기 자신을 잃게 하는 인격 살해다. “변태 쾌락주의자”가 되어 상대를 정신병이나 자살로 내모는 거다. 화자 “알리사 청”은 친구든 제자든 애인이든 심지어 부모조차 가차없이 내치는 식인종이다. 그 이유에 대해 독자에게 대놓고 단언도 한다.
“식인종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먹힌다. 세기의 식인종도 다른 식인종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쫑 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다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55쪽)
화자의 동선을 따라 식인사회를 엿보다가, 다소 결이 다르긴 해도, 지금 여기의 표적 수사와 그와 관련된 별건수사, 그리고 청와대 코앞에서 서슴없이 막말하는 특정 종교인의 행태가 절로 연상된다. 뻔히 불특정다수에게 식인하는 수가 짚이는 데도 행정적 대응방안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그 현상들을 일으키는 이들의 속내도 “학살의 현장들에서 매번 살아남았다”는 화자의 망상처럼 음울하게 기울어져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120쪽)
결국 머리를 굴리고 몸부림쳐서 “성공한 식인종”이 되더라도 제로 섬 사회에 갇힌단 얘기다. 선의의 관계재 바닥이 영혼 방전으로 이어지니 그렇다. 화자 역시 이미 그 올무에 걸려 있다. “마녀 크리스티나”를 학습한 “알리사 청”의 성명에서 읽혀지는 왜곡된 전방위적 방어태세가 그것이다. 망가짐에서 회복 중인 남자친구4 성연우가 그 아픈 데를 덧낸다.
“그 장난을 빼면 너는 시체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너는 영혼이 없어. 이해해? 젠장 어떻게 이해하겠어, 영혼이 없는데… 너는 완전히 제로야. 완전히 텅 빈… 이건 마치… 귀신 들린 허수아비가 사람 행세를 하는 꼴!” (162쪽)
소설 결미에서 화자는 성연우의 지적을 망상의 자가당착으로 시인한다. “인생에 교훈 따위 없다”고. 그렇다고 다른 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 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 있다”고. 식인하는 사회의 손익 샘샘을 완벽하다고 꺠끗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만일 화자가 “텅 빈”의 의미를 우주 질량불변의 법칙에 닿아 있는 무상함과 연계했다면, 인생의 교훈을 얻었으리라.
문득 지난 21일자 신문 한겨레의 커버스토리, “외로움은 새 사회적 질병”이 생각난다. 지난해 1월 영국 내각에 ‘외로움 담당 장관’직 신설을 소개하며, 외로움이 일종의 ‘사회적 전염병’임을 부각시킨다. 보통 사람들의 원만한 인격 유지를 위해 문제적 개인들에 대한 “국가적 대응”의 필요성을 역설한 셈이다. <0영ZERO零>이 선보인 식인의 망상도 타인(들)의 호소에 대해 귀 막은 문제적 영혼의 외로움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0일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한, 프랑스 법원의 ‘회사에 의한 괴롭힘’을 인정한 기념비적 판결이 참 부러운 이유다. 식인의 사회적 전염병을 막으려면, 법망을 빠져나가는 무소불위의 법치보다는 불특정다수가 환호하는 공정의 법치가 행해져야 한다. 암튼 무거운 주제인데도 빨려 들어가듯 읽은 <0영ZERO零>의 세태 반영 말솜씨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