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김유경의 오늘] 팬데믹 현장에서 사전투표하다

by 김유경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그 바람에 먼지티끌이 눈으로 들어온다. 봄이 마뜩찮은 이유다. 그러나 내 집 마당에 하얀 목련이 만개하고, 흰 민들레가 솟으면 마음이 환해진다. 더욱이 쌉싸래한 달래무침과 머위나물을 먹을 땐 봄이 마냥 좋다. 오늘 점심엔 새콤달콤한 고추장에 버무린 비름나물과 돌나물에 된장옷 입은 열무무침 섞은 비빔밥을 뜨며 나도 초록대열에 합류한다. 라일락 향도 뛰어들어 날 극락으로 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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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날에 일주일에 한 번 약국에 간다. 공적 마스크 사러. 마스크를 쓰면 눈과 이마만 보이니까 세수를 안 한 채 나서기도 한다. 길에선 마스크가 없는 얼굴을 거의 볼 수 없다. 나도 예외가 아니면서도 이 상황이 일상이 될까 한편 두렵다. 물론 하나같이 마스크를 쓴 요즘 거리 풍경은 공공의 안전을 꾀하는 적극적 행위의 결과다. 이 팬데믹 현상에서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둘 있다.


하나는 팬데믹까지는 아니었지만 코로나19 같은 미증유의 감기 바이러스를 다룬 국내 영화 ‘감기’(2013)다. 다른 하나는 옥수수밭만으로 세계적 식량난을 버티다 우주에서 해법을 찾는 영화 ‘인터스텔라’(2014)다. 두 영화 모두 이기심 대신 공공의 연대를 선택한다. 지역 확진자수를 증폭시킨 신천지처럼 정부와 지자체의 당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프라인 예배를 고집하는 교회들과는 딴판인 정신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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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켈리는 <통제불능>(김영사, 2019)에서 생명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비비시스템vivisystem에 대해 말한다. 그가 조사한 인공적 비비시스템들은 “전 지구적 통신 시스템, 컴퓨터 바이러스 인큐베이터, 로봇 원형, 가상 현실 세계, 합성된 애니메이션 캐릭터, 다양한 인공 생태계, 지구 전체의 컴퓨터 모형 등”(19쪽)으로 복잡하고 웅장하다. 그런 인공신경망들이 세계 도처에서 인간 문명을 그물처럼 뒤덮고 있다.


비비시스템의 문제는 바이러스처럼 새로운 특성을 보이는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영화 ‘그녀(2013)’에서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의 딥러닝이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진행되던 게 생각난다. 코로나19와는 비교가 안 될 그 통제불능의 행위가 언제든 지구촌을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통제불능>의 요체를 기술한 부분에서 케빈 켈리도 그런 경고를 한다.


“우리가 생명의 힘을 창조된 기계에 불어 넣으면 우리들은 기계들을 제어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계들은 야생성을 획득하고, 또한 야생에 수반되는 의외성을 띠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들이 마주하는 딜레마이다. 즉 신들은 그들이 만든 최상이 창조물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만들어진 것들의 세계는 곧 태어난 것들의 세계와 비슷해질 것이다. 자율적이고 적응적이며 창조적인,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세계 말이다.” (21쪽)


요즘 눈에 띄는 현상은 예년에 비해 대기의 질이 좋다는 거다. 초미세먼지조차 대개 보통 수준인 봄날의 연속이라니! 세계적으로 공장 가동이 많이 멈춰지고, 휘발유값이 떨어지고, 실업자가 늘고 등 경제현황이 악화되면서 대기가 순해진 거다. 자연을 덜 건드린단 얘기다. 지금처럼 인간 문명이 생명공학에 편중될수록 자연파괴는 심화될 수 있다. 한 번 더 케빈 켈리의 조언에 귀 기울인다.


“초원을 파괴하는 것은 단순히 귀중한 유전자 보고를 파괴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은유와 통찰, 새로운 생물학적 문명, 곧 모형의 보고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20쪽)


오늘은 4월 15일 총선의 사전투표 둘째 날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수도권 사전투표율보다 낮다는 어제 뉴스가 있다. 앞뒤 사람과 간격을 유지한 채 줄을 서고, 발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 후 비닐장갑을 끼고, 유독 긴 투표용지에서 원하는 당의 번호를 재차 확인해 찍고, 비닐장갑을 빼 버린 후 투표소를 나선다. 그 시간 동안 70대 이상 할머니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KakaoTalk_20200412_112955086(손소독제 비치된 투표소).jpg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어떤 권리든 제대로 행사하려면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전 세계 팬데믹 상황을 지켜보는 요즘 공공의료 같은 국책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지구촌에 구축될 생물학적 문명을 누가, 어떤 집단이 기획하느냐에 따라 이 봄날의 질감마저도 장차 날릴 수 있다. 종교적 이기적 신념보다 타자의 생명을 우선하는 공공의 연대가 뿌리 내릴 토양을 투표로 일구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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