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순 씨, 고마웠어요

[김유경의 오늘] 폐차했으나 추억 속에 현존하듯

by 김유경

한 달 전에 폐차인수증명서를 받았다. 만 16년을 애용하고 보내면서도 못내 아쉬웠다. 업자에게 넘기기 직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고마웠어. 잘 가.” 숱한 부품들로 구성된 무생물체지만, 발품을 덜어주며 인생사에 동행했으니 내겐 생물과 진배없는 의지처였다. 특히 낯선 체험들을 안기어 다양한 세상 풍경에 눈뜨게 한 공(功)은 교통사고로 입원한 일조차 해프닝으로 품게 했다.


운전대를 처음 잡았을 때의 놀람을 기억한다. 같은 거리를 오가는데 보이는 게 달랐다. 뚜벅이와 운전자의 시선이 다른 건 높낮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입장이 바뀌자 관점도 변했다. 운전자의 알량한 관점으로 보행자 관점을 거스르는 내 짓거리를 비웃으며 소설 <완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완장>이 태어난 1983년에 원순 씨는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완장 그 자체, 검사였다.


그러나 원순 씨(고 박원순 시장이 좋아하던 칭호였기에 내처 쓴다)는 그 완장을 벗어던지고 인권변호사로,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으로,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아름다운재단(가게) 상임이사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전 재산을 투척하며 열정적으로 끊임없이 정진했다. 내가 의류 등의 재활용품을 밖에 내놓을 때, 꼭 드라이나 물빨래를 행하거나 차곡차곡 간추리는 건 원순 씨를 흉내 낸 거다.


지난 7월 9일 오후 6시경 지인의 카톡 문자를 받았다. “박원순 시장님이 연락 두절이라고 딸이 연락했는데……, 실종신고.” 놀라 포털 기사를 살폈다. 예단하는 단어, “성추행”이 있었다. 정의당 동지들로부터 공격 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을 떠올리며 원순 씨가 무탈하기를 기도했다. 몇 보수 유튜버의 인면수심 취재행위와 추모조차 ‘2차 가해’로 모는 분위기가 잇따라 한껏 치솟았던 K-방역의 자부심이 나동그라졌다.


망연자실하게 한 주를 보냈다. 카톡도 통화도 거부했다. 나를 힘 빠지게 한 건 크게 둘이었다. 먼저는 팩트 체크는 고사하고, 순식간에 여론몰이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30여 년 애씀의 덧없음이었다. 그러다 든 생각에 더 힘들었다. ‘어쩌면 원순 씨는 장차 일어날 막된 정치적 행태들이 뻔히 보여 왈칵 혐오감에 휩싸이다 싸울 의지를 떨군 건 아닐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심사가 짚어져서 먹먹했다.


피해자를 위해 정당한 법적 조치가 빠르게 진행되길 바란다. 아울러 그 과정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원순 씨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우리)를 위해서다.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온 나라를 황폐화시킨 전 법무부장관 조국 일가 건으로, 또 최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5개 매체가 언론중재위로부터 무더기 징계를 받은 정의기억연대 건으로 내 삶은 위협 당했으니까.


초보운전자 시절 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대개는 낯선 행인들이었다. 유독 주차에 애먹던 나는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했고, 누구든 선뜻 도와줬다. 살 만한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을 확대재생산하려던 원순 씨를 난 추모한다. 폐차한다니까 몇 사람이 물었다. 어떤 차를 살 거냐고. 난 원순 씨의 서울시가 시행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를 지지한다. 물론 코로나19가 일깨운 환경문제도 껴들었지만.


원순 씨, 고마웠어요. 혹 나중에 고소인을 옹호할 일이 생기더라도 고마운 일들을 지울 수는 없을 거예요. 결국 폐차하고 말았지만, 추억 속에 현존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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