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짠하다

[김유경의 오늘] 실재하나 실체는 없는 향기

by 김유경


목련이 지고 있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연둣빛 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담을 경계로 마당 쪽 가지들은 파릇파릇하고, 도로 쪽 가지들 목련은 한 두 날 더 견딜 모양새다. 정남향 볕이 빚은 언밸런스다. 동네 갑장친구 남편이 가지치기한 나무 형상이 전보다 멋지다. 수양버들처럼 가지들이 늘어져 예술작품인양 시선을 잡는다. 그 아래 검누렇게 널브러진 꽃잎들을 ‘줍는’ 게 요즘 내 일과다.


비질을 하면서도 맘으로는 ‘줍는다’. 꽃이 져야 잎을 틔우는 목련의 불문율을 알지만, 지나가다 말 건네던 낯선 여자의 말처럼 짠해서다. “나이 들다 보니 목련꽃이 여자 인생 같아요. 그토록 아름답던 게 이리 빨리 지며 흉해지니. 짠해요.” 목련만큼 흉하게 지는 꽃이 또 있을까. 우아한 백목련이 쩍 벌어지며 검누른 기운에 휩싸여 툭 낙하한다. 보도블록에 떨어져 밟히기라도 하면 영락없는 똥꼴이다.


나는 왜 지는 목련꽃이 짠한가. 대개 나무들이 그렇듯 목련나무는 일년 내내 무상하다. 그래서 종류를 달리한 부산물들이 끊임없이 마당에 떨어진다. 한겨울에도 붓 모양의 꽃눈을 틔우고 갈색 털외투를 입힌 채 봄을 준비한다. 몇 년을 지켜봐도 여일한 변화다. 그 여일함에 항상 같지 않은 무상이 있다. 무상은 허무가 아니다. 무상 속에 주체가 끼어들고 진일보가 행해지며 생명의 연속성이 유지돼서다.


그러니 무상함은 하나의 기회다. 늘 그러할 것임을 아는 건 일상사에서 만나기 어려운 신뢰감이다. 신뢰할 때 우리는 약속할 수 있고, 하고자 함을 밀어붙이는 동력이 된다. 더욱이 목련나무는 그 무상함에 부단한 인고가 따름을 내게 일깨운다. 그 인고 중 하나가 똥꼴이 된 목련꽃의 운명이다. 지금의 나를 버려야 장차 새로운 나를 피울 수 있다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 신세를 통과하기가 내겐 여전히 고(苦)다.


검누르한 목련꽃의 잔해를 보는 맘이 그래서 짠하다. 그 짠함에는 내가 행하지 못한 놓아버림에 대한 반성과, 그렇게 하는 걸 여전히 두려워하는 나를 바라봄이 섞여 있다. 그런 나를 위로하며 격려한다는 걸 느낄 때가 비질할 때다. 평소 목련꽃은 향기가 세지 않다. 만개한 목련나무 아래서도 정말 어쩌다가 운이 좋아야 칼날 같은 연한 향을 잠깐이나마 쐴 수 있다.


그런데 목련꽃잎 무더기를 쓰레기봉투에 담는 과정 중에 문득문득 목련꽃 향기가 훅 끼친다. 톡 쏘듯 진한데 자꾸 코를 내밀게 한다. 생각해보니, 할 일 마치고 기운이 다해진 ‘나’가 잔해의 ‘우리’로 스며들며 내는 죽음의 아름다움이다. 좀 전에 말 나눈 낯선 이가 떠나며 비질하는 내게 말한다. “괜히 욕보시네요.” 아마 그녀가 나 대신 비를 잡으면 그런 말을 안 하리라. 목련 향을 음미하던 나는 그저 미소 짓는다.


낯선 이들끼리 얕은 속내라도 보이며 좋은 낯으로 말을 섞는 일은 요즘은 드물어진 미풍양속이다. 목련 향에 사람 향까지 선물한 목련나무를 올려다본다. 멋들어진 나무의 휘어짐을 안긴 갑장친구 부부의 따뜻함이 다시금 떠오른다. 실재하나 실체는 없는 이런저런 향기를 만끽할 수 있으니 행복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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