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책씻이] 풍자소설의 타임머신 기행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블라디미르 보이노비치, 문지, 2018.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은 한 달 남짓한 사건의 엮음이다. 등장인물마다의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전개해 당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의 민낯을 조명한다. 단기간의 사건들로써 스탈린 시대(1924~1953)를 통째로 까발리는 풍자가 인상적이다.
물론 소설의 기본 얼개는 병사 이반 촌킨의 삶이다. 병사 같지 않은 병사로서 지내야 하는 나날, 즉 “이상한 모험”이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엔카베데’(KGB의 전신인 내무인민위원부)의 존재와 위상을 노출시킨다. 그 과정에서 의문이나 질문을 불허(통제)하는 당의 운영 방침, 소위 ‘~(하)라면 ~하는 것’이 당연한 맹목적 일상 풍경이 전개된다. 꺼림칙한데도 당의 논리를 따르는 심리 묘사 익살이 쏠쏠하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독소전쟁이 발발한 1941년 6월 22일 직전・직후 즈음이다. 볼품없는 말년 사병 이반 촌킨은 크라스노예 마을에 불시착한 군비행기를 지키는 보초병으로 파견된다. 곧잘 얼뜬 봉변을 당하는 촌킨을 쓸모없는 골칫거리로 여기던 군사령부가 눈앞에서 치우려 보낸 것이다. 이후 군에서는 촌킨과 비행기에 대해 잊어버리고, 촌킨은 마을 우편배달부 뉴라와 동거하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린다.
독소전쟁을 알리는 대국민 라디오 연설 이후에도 촌킨은 군의 출동에서 제외된다. 그런 촌킨이 엔카베데의 체포 대상이 된 건 뉴라의 암소 탓에 잡종식물 표본을 몽땅 잃은 아마추어 육종학자인 이웃의 클라디셰프가 복수심으로 촌킨을 밀고해서다. 독일군 스파이라는 가짜뉴스에다 촌킨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촌킨 일당’을 체포하기 위해 소련군 1개 연대가 동원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짜 같은 가짜뉴스는 일상 언저리에 늘 잠복해 있다. 남을 헐뜯는 뒷담화에서부터 허무맹랑한 내용의 찌라시나 시민의식을 시험에 들게 하는 정략적 왜곡까지 끊이질 않는다. 스마트폰의 세상에서의 가짜뉴스 파급력과 언로가 막힌 USSR하의 가짜뉴스 위력 중 어느 것이 더 강력할까. 언제 어디서든 가짜뉴스가 기승부리는 삶터는 인간(성)의 폐허가 되기 쉽다.
결말에서 촌킨을 영웅으로 추대하다가 죄수로 압송하는 반전은, 부조리한 사회 현상이 속출하는 당시를 현장감 넘치게 전달한다. 이제까지 진행된 풍자의 맥락을 살려 아퀴 지음이 소설의 백미로 다가올 정도다. 또한 그것은 스탈린 체제의 ‘스투카치(밀고자) 문화’가 무고죄에 해당할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는 제도적 장치라는 질긴 고발정신이기도 하다.
촌킨 이외에도 그 제도가 낳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희생자가 된 인물들 대부분이 체제 순응자라는 건 아이러니다. 촌킨의 체포 영장을 발부한 밀랴가 대위는 촌킨의 포로가 되었다가 촌킨을 체포하려던 연대의 포로가 되어 촌극 같은 오해에 얽혀 결국 독일군으로 판단돼 사형 당한다. 밀랴가 대위를 독일군으로 오인한 부카셰프 소위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반국가 행위를 한 스파이로 단죄된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의 미덕은 그 아이러니를 정치의 희화화(戲畫化)로써 쉽게 소통시키는 데 있다. 그걸 통해 독자인 나는 “기관은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뭔가 이상한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건 현장에 나타난다는 명성을 갖고 있었다.”에 깃든 인간의 폐허를 응시한다.
그렇기에 크라스노예 집단농장 회장 골루베프가 촌킨에 대해 내린 인간적 평가는 불순한 응시이자 반체제적 견해다. 골루베프가 무용지물로 분류돼 주류에서 밀려난 촌킨의 쓸모를 발견한 건, 기관의 지시와 거리 먼 행위들을 함께하며 촌킨을 관찰할 수 있어서다.
“겉모습만 보면 바보 중에 상바보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하는 수완이 국가를 통치해도 될 정도거든. 자네는 사병으로 남긴 아까워. 중대, 아닌 대대 지휘관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골루베프는 병사 이반 촌킨을 삶의 주인공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게 만든 건 인간 이반 촌킨의 저항정신이다. 군에서는 입 뻥긋도 못하던 이반 촌킨은 체포에 불응하고 삶에 대해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집단농장의 성과에 기여한다. 스탈린 시대의 획일화가 인간의 도구화(사물화)를 부추겼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정치적 사회적 동물임을 자각하면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은 타임머신이 되어 나의 스탈린 시대(USSR) 기행을 도운 셈이다. 줄기차게 반체제작가의 길을 고집하여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한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Войнович(1932~2018)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