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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Jul 28. 2021

뇌피셜에서 자유로운 세상은 없다

[김유경의 책씻이] 헌신적인 ‘미운 로봇 아이’, <클라라와 태양>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은 제4차 산업혁명을 의제로 설정한다. 이후 인공지능의 실용화는 기정사실이 된다. 자의식을 지니고 딥러닝하며 인간처럼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공공연히 거론하면서.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인간형AI 클라라를 1인칭 화자로 한다. 장차 디지털 혁명이 만들 세상에 대한 전망을 클라라의 시선으로 암시하면서.     


픽션은 작가의 뇌피셜로 살진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창조한 클라라는 헌신적 AF(Artificial Friend 인공 친구)다. 같은 기종 중 감성 포착을 별나게 잘하는 ‘미운 로봇 아이’다. 소설은 클라라의 일대기, 즉 가게에 진열된 상품 시절부터 폐기되어 야적장에 방치된 처지까지를 담은 6부 구성이다. 조시의 AF가 되어 조시를 낫게 하려는 희망의 뇌피셜대로 성공한다는 알맹이를 지닌.  

    

“조시가 좋아지게 해 주세요. 거지 아저씨한테 한 것처럼요 (…중략…) 머릿속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동안 주위에서 무언가가 뚜렷하게 달라졌다. 헛간 안은 여전히 밀도 높은 붉은 빛으로 가득했으나 이제 어떤 부드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사방이 아직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있긴 해도 부분 부분이 해의 마지막 빛줄기 속에서 둥둥 떠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중략…) 헛간 안쪽이 점점 어둑해지고 있었지만 다정한 어둠이었다. 이내 부분 부분 쪼개진 것들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실내 공간이 나뉘어 보이지 않았다. (…중략…) 하늘이 밤으로 물들며 별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해가 쉬러 내려가면서 나를 향해 다정하게 미소 짓는 걸 느꼈다.” (244쪽~247쪽)     


주 에너지원이 태양광인 클라라는 해의 자양분이 조시에게도 필요하다고 여긴다. 조시의 병은 소위 “향상된 아이들”을 위한 통과의례를 치르며 걸린 건데, 햇빛을 차단하는 공해 배출 기계를 망가뜨릴 물질을 제 몸속에서 꺼내면서까지 헌신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그 지점에서 조시의 복원을 꿈꾸며 초상화(신체의 모든 부위를 복사하고 전송하는 프로젝트)를 그린다는 또 다른 희망 표출에 있다. 

     

조시를 정량 분석한 초상화로 몸을 만들고, 조시의 언행을 빼닮듯 학습한 클라라를 정성 분석한 결정체로 삼아 로봇인간 조시를 만들겠다는 거다. 언뜻 그럴싸하나 장내 세균들이 만든다는 신경전달물질들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 마음이 떠오르자 음식물과 거리 먼 클라라의 한계가 짚인다. 딥러닝하는 로봇의 자의식을 인간류의 마음이라 부르기엔 이른 거다. 소설은 조시의 건강 회복을 핑계로 초상화를 미완성한다.   

    

디지털 혁명도 인간의 뇌피셜인 바람(희망)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희망을 품은 로봇 클라라를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절충된 인간적 세상을 지향하는가 싶다. 이제 막 둥지를 떠나는 두 캐릭터, 조시와 리키가 그걸 지지한다. “향상된 아이들”의 길을 선택한 조시와 비주류에 머무는 리키는 소위 사랑하는 사이다. 사랑하지만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며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두 사람을 클라라는 이해할 수 없다.  

   

작가는 조시 아버지의 말을 빌려 기성세대가 “물려준 엉망진창 세상에서 자기 길을 꼭 찾기를 바라”며, 어둔 세상을 비출 희망(해)의 잔불, 조시(들)와 리키(들)이 체제 안팎 곳곳에서 자라고 있음을 넌지시 가리킨다. 클라라는 조시 어머니의 뜻대로 서서히 꺼지도록 폐기된 채로 평온한 시간을 맞는다. 자기의 남다름을 알아준 가게 매니저와 해후하는 반가움을 겪으며. 

    

대개 희망은 비합리적인 뇌피셜에 속한다. <클라라와 태양>은 그 희망의 잔불질이 계속되어야 인간이 살만한 세상이 유지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둘러보면 좋든 나쁘든 뇌피셜에서 자유로운 세상은 없다. 일상적 사고를 지배하려는 언론 프레임도 뇌피셜이다. 포털에 걸리는 뉴스들이 AI의 결정이라 둘러대는 일이 반복되는 판에 대거리할 뇌피셜은 언론개혁법 만한 게 없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해의 기운을 잡아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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