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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Sep 13. 2021

자유의 바람

[김유경의 책씻이] <바람의 자유>(지안 스님, 사유수,  2021)

첫 시가 <귀로>다. 며칠 전 뉴스공장에서 들은 정미조의 노래 제목과 같다. 그러나 가고픈 시공은 다르다. 노랫말은 어린 꿈과 무지개가 있는 회상 속 “동화의 세계”지만, 시 세계는 그곳 너머 생사 없는 본래면목을 향한다. 두 순수 지향의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시집 <바람의 자유>가 고지식한 선지식풍이란 얘기는 아니다. 외려 통통 튄다 할 만큼 서정적이다. 

     

나는 지안 스님을 가까이에서 몇 번 뵌 적 있다. 장소를 달리한 사진도 두 컷쯤 있으니까. 그것 보다는 한문본 화엄경 해설을 들으며 상상할 수 있어서 놀랐던, 그리고 의미 깊은 맥락을 일화 곁들여 쉽게 전달하는 수필집에 감탄했던 두 경험이 떠오른다. <바람의 자유>는 그 겪음이 껍데기가 거의 없는 선지식의 알맹이에 기인한 것임을 알게 한다. 인간적 감성을 감싸는 그윽한 지혜의 눈투성이다.      


그 혜안이 감정이입을 일으킨다. “종일 산 속에 앉아/눈으로 산을 보지 않고/눈으로 산을 듣는다”(‘묵언’ 중에서)처럼. 상대와 얘기할 때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삶의 요령 같다. 요양 병원에서 지내는 엄마의 과거 표정들 중 간과했던 순간들을 재생해 줌 인하듯 떠올리는 요즘이라 더 그렇다. ‘그랬구나~~’ 회한 속에서 나도 눈으로 기억 속 엄마를 자꾸 듣는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들어라’,다. 


그 물기 밴 마음으로 ‘어떤 인연因緣’이나 ‘살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 등을 마주하니 경계 없는 승속의 감성 표출이 친근하다. "내 그리움을 그리워해 줄/그대가 그립다"(‘둘의 그리움’ 중에서)와 “무심한 너를 두고/망상 피워 미안하다”(‘철쭉’ 중에서)를 오가는 자유로움이 자연스럽다. 그런 날것을 대변하는 시가 한결같지 않은 마음을 응시한 ‘조각 난 얼굴’이다. ‘산창山窓의 풍경’처럼 스님 내를 물씬 풍기면서도.   

    

“숲속에 앉아/하늘을 본다 // 나뭇가지 사이로/깨진 유리조각처럼/조각난 얼굴이/나를 내려다본다 // ‘이게 네 얼굴이다/너는 왜 조각난 얼굴을/하고 사느냐’/하늘이 말한다 // 나는 슬펐다/‘내 얼굴이 조각나다니/깨졌단 말인가’ // 갑자기 본래 얼굴이/그리워졌다/어디 있을까/본래 얼굴이여 // 구름을 타고/하늘 멀리/찾아가고 싶었다” (50~51쪽)     


산승이 일으키는 분위기에 몰입하다 돌연 내가 왜 지안 스님을 좋아하는지 일깨우는 ‘안개’에 꽂힌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은신술隱身術을 익혀/나쁜 것들 때려 부수고/안개 속에 숨어/일 저지르고 싶었다”. 지안꽃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외면하지도 않는 사유를 응축한 ‘꽃의 하루’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산다는 건 꽃을 피우는 일이니까.  

   

“‘꽃을 피워라/천지가 공생하는/인연의 천막에서/스스로 자각한/생전의 일”(56쪽)     


지안꽃에게 “인연의 천막”은 “한 송이 버섯”이기도 하다. “생각하면 이 세상도/한 세상 버섯 같은 것//삿갓 밑에 얼굴 숨기고/하늘 가리고 사는/야릇한 생존의 굴레”(‘세상은 한 송이 버섯’)니까. 그 굴레는 어느덧 ‘가을 객수客愁’의 “걸망”이 되었다가, ‘불두화佛頭花’를 지피기도 한다. 소위 운수행각雲水行脚 속 ‘바람의 자유’이기보다 지안꽃이 품은 “자유의 바람”이다.   

  

갖가지 고통을 견디어야 하는 이곳을 사바세계라 한다. “먼 윤회의 전설”을 돌리는 ‘물레방아’를 보며 “상승하는 초여름 열기처럼/늙지 말고 익어지자고/언제나 푸르고 싱싱한/숲이 되어 남아 있자고”(‘초여름 숲속에서’ 중에서) 다짐해야 하는 이유다. 굳이 연화장세계를 운운하지 않아도 부지불식간에 ‘돌의 자화상’이 된 세월 겪은 이들은 동의하리라. 아스팔트 틈새를 비집고 뿌리 내려 꽃 피우는 연약한 풀들도 하고 있으니.     


뒤로 갈수록 산승에게 어울리는 사유 세계가 풍성하다. 한가로운 삶처럼 보여도 서슬 시퍼런 정진이 엿보인다. ‘꽃을 볼 줄 아십니까’,식으로 날 자극하면서.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가족끼리 사랑하며 보살피며/이웃끼리 도우며 협력하며” 살기를 ‘새해 아침에’ 기도하면서. “땡볕에 의한 타살”로 사망한 금송 한 그루 “옆에 나무 따라 자살을 할까봐”('땡볕이 슬픈 날' 중에서) 톱질을 하면서.   

    

지안 스님은 ‘나뭇잎 산조散調’에 사후 비목에 새길 시구(詩句)를 넌지시 남긴다. “‘이렇게 왔다/이렇게 가노라’”. 그 동선이 <바람의 자유>다. 덤으로 현산 스님 머무는 ‘천황사 전나무’와 “명견 복길이”를 마주하면서 지안 스님의 ‘경책 두 마디’, “화내지 마라”와 “욕하지 마라”를 마음에 새긴다. 그렇게 법문 같은 시집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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