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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Sep 01. 2021

이 정도는 돼야 충실한 독자

[김유경의 책씻이]<봉준호의 영화 언어>(이상용, 난다, 2021)

봉준호는 히치콕의 독자고, 이상용은 봉준호의 독자고, 나는 이상용의 독자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렇다. 봉준호와 이상용은 독자로서 충실하지만, 나도 그런지는 미지수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영화 비평가 이상용이 봉준호의 데뷔작 ‘백색인’(1993년)부터 ‘기생충’(2019년)까지 12작품을 정독해 추린 종적 특성들로써 봉준호 특유의 언어를 밝힌 맥락 있는 평론이다. 

     

평론은 대개 글쓰는 이의 무의식적 가치와 지적 밑천을 드러낸다. 내가 평론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러니까 맥락 있다 여김은 저자의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이 객관적으로 내게 어필한 거다. 영화 언어(이하 영화)는 영화 속 대사, 문자, 영상, 이미지 등 관객의 의식대상들뿐만 아니라 감독의 내밀한 의도를 포함하기에 객관화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읽는 내내 저자의 탄탄한 논리적 설득력에 난 매료된다.    

  

내게도 봉준호의 영화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다. 현실에 근거하는 리얼리즘이되, TV나 여러 미디어들의 뉴스가 선택한 사실 너머 진실을 비억압적으로 보게 한다. 소위 열린 결말인 그걸 저자는 영화가 “대타자”(굳이 보내지 않아도 수신하는 관객)에게 띄우는 편지라 일컫는다. 현실의 심연(현실인식)에 직면하게 하는 아브젝시옹(관객에게도 내재된 인간의 이중성 등)과 헤테로토피아(일상 공간에 존재하나 간과되는 공간 등) 관련 장면들을 실감나게 제시하면서.    

 

“봉준호의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지점은 세상이 아는 것과는 다른 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진실이 묻히는 순간을 담담하게 보여줄 때다.”(250쪽) 

    

내겐 ‘괴물’, ‘마더’, ‘기생충’이 떠오른다. 비교적 쉽게 짚어져서 그럴 게다. 없는 바이러스 공포를 퍼뜨려 진실을 수습하는 ‘괴물’은, 아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살인자가 되고서도 일상을 천연스레 유지하는 ‘마더’만큼 전율스럽다. 행위 주체만 다를 뿐인 두 무리함은 겁 없이 남의 것을 탐하는 ‘기생충’의 기우가 쓴 편지에선 아예 노골화된다. 셋 다 “현실의 갈등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 가족  멜로드라마여서 “소망의 비전은 제시하지만 소망의 결과를 허락하지 않는다.”     


저자는 봉준호가 연출한 괴물을 3종으로 분류한다. “현실이라는 괴물”, “이데올로기적 괴물”, “공포정치의 괴물”. 그걸 낯선 유머와 균열로 연출해 웃픈 심사를 안기는 게 봉준호식 “삑사리”다. 그 효과를 저자는 “추격전이라는 형식”의 이야기 구조를 통해 “스릴러, SF, 코미디의 장르를 아우른” 봉준호의 작가적 자의식이 승객 모으기에 성공한 것으로 본다. 관객이 영화(버스)와 함께 괴물을 추격하다 자기 속 괴물을 보게 하는 식으로.   

  

“본다는 것은 단순한 표면이 아니라 현실의 심연을 보는 일이며, 그 공포를 경험한다는 뜻이다. 봉준호의 영화에서 본다는 것은 ‘심연’과 마주하는 과정이다. (…중략…)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는 봉준호의 인물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110쪽~111쪽)     


너나없이 동참하여 가동시킨 현실의 폐쇄성을 보게 된 관객에게 봉준호의 영화는 희망과 변화의 가능성을제시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이의 존재”를 가리킨다. 내가 놓친 부분이다. 아이는 봉준호식 낯설게 비틀기, 즉 “시각적 변증법”으로 현실을 변주해 미디어의 사실과 영화 속 현실의 진실이 다르다는 간극을 보게 하는 데 한몫한다. 본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거다. 아이의 존재가 "각성제"인 거다.    

  

저자에 비추니 내 글은 인상비평 수준이다. 내가 짚은 요인들을 그도 건드린 ‘기생충’ 비평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봉준호 영화를 분석한 11개의 장 구성을 통해 저자는 봉준호 영화의 추격전만큼 영화 비평 장르의 변형과 창조를 선보인다. 봉준호의 영화에서 히치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듯. 그걸 따라 읽으며 봉준호 영화가 도착하려는 최종 목적지처럼 내게 “흔들린다”를 안기며. 이 정도는 돼야 충실한 독자인 거다.    

 

참고(졸고: ‘기생충’ 기우의 환한 몽상이 위협적인 까닭)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45919&CMPT_CD=P0001&utm_campaign=daum_news&utm_source=daum&utm_medium=daumnews#dv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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