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경 Aug 26. 2021

친구와 통화하다 말문이 막히다

[김유경의 오늘] 나는 불학생(佛學生)이다

어제 오랜 친구와 통화하다 말문이 막혔다. 인간의 한계를 알기에 개개인이 부처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어떻게 노력으로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냐고. 그러면서 네 목표가 해탈이냐고 물었다. 기독교인으로서 늘 마음씀이 따뜻하고 넓은 그녀에게 난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불교를 샤머니즘과 가까운 신비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여기는 인식에 내 섣부른 설명은 오해의 덧칠을 하기 십상이니까. 

    

난 지금 무르익지 못한 불학생(佛學生)이다. 그녀도 알 듯 나는 한때 신약성와 구약성서를 여러 번 통독하며 교회를 다녔고, 구약성서에 충실한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도 했다. 내 친구나 지인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다. 나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해당 종교의식에 참석하게 되면 그 의식을 따른다. 이슬람 지역의 모스크에 들어서서도 그랬고, 인도에서 힌두교도들을 만나서도 그랬다.  

    

내가 불학생이 된 건 현산 스님을 만나면서였다. 치매증이 악화돼 요양병원에서 생일케이크를 받고서도 자연스레 합장하는 엄마의 그늘 덕에 암암리에 사이비 불자로 살긴 했지만. 그래선지 처음엔 걸핏하면 땡땡이치는 불량 학생이었다. 내리 세 번 재밌게 정독한 <금강경 강의>(남회근 지음)를 시작으로 현산 스님께서는 묵묵히 불경 서적들을 꾸준히 보내주시며 내 근기를 살피는 공양주로 자임하셨다.  

     

남들은 내가 이성적이고 비판적이라 여긴다. 그래서 까다롭다고. 스스로 감성적일 때가 더 많다고 느끼지만,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어릴 적 내게 한 어른이 길을 물었을 때, 이솝 우화를 떠올리며 선뜻 대답하지 않자, 그냥 돌아서 걷는 그 분의 등을 향해 잠시 후 몇 분 걸린다고 소리쳤다. 걸음걸이를 봐야 판단할 수 있었으니까. 그 분은 날 돌아보시더니, “허참, 녀석...”,했다. 아직도 그런 면이 내겐 있다.  

     

그냥 “믿습니다”를 못 하는 내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맘이 편했다. 뭐든 의문을 품고 질문하길 권하셨고, 어떤 권위(자)에 대해서도 무조건적 수용을 하지 말라 당부하셨고, 형이상학적 질문이나 의문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씀 없이 현재 닥친 문제 해결(‘생노병사’ 같은)에 집중하게 하셨다. 마음 가는 대로 하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 하셨다. 희생이 아닌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이 기본인 지혜의 길을 일러주셨다.   

   

내가 불교에서 삶의 비전을 발견한 건 검증 가능하다는 특성 때문이다. 부처님이 밝히신 내용들이 세계 도처에서 선정에 들 줄 아는 수행자들과 선지식들에 의해 한결같이 증명되었고, 부단히 입증되고 있다. 단순히 신비적이지 않은 거다. 철저히 부처님 말씀(법)과 자성(자기의 불성)에 의지해야 하는 ‘개인의 길’이어서 막막할 때도 있지만, 현산 스님 같은 스승이나 길동무들과 울력하는 ‘대중의 길’이기도 해서 든든하다.   

   

통화를 마치고 자문했다. 불학생으로서 내 목표는 무엇인가. 당장 시급한 게 탐진치(貪瞋癡)를 줄이는 일이다. 엄마를 통해 내가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얼마나 어리석은지, 얼마나 집착이 강한지를 뼈저리게 알았으니까. 수시로 염불명상을 하며 마음을 맑힌 밝은 낯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일상을 닦아야 가능할 수 있다. 끝없는 자기 부정과 버리고 또 버림으로써 이루는 자아 발견이기에 주체적 노력이 필수다.  

    

불교의 인과 법칙은 현실적으로 내 언행에 도움이 된다. 최소한 타인(세상)에 대해 윤리적 잘못을 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니까. 그와 연관된 업 사상이나 윤회 사상 역시 내 삶이 처한 바를 남 탓 않고 제대로 응시하게 한다. 나를 돌아보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전진하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충실하게 한다. 암튼 다음 통화 때는 내 지혜가 좀 더 증장되어 귀한 벗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좀 전에 현산 스님께서 보내신 <불교의 길>(에드워드 콘즈 지음)을 받았다.(20210826, 14:30)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