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경 Nov 11. 2021

작가가 소설 DNA로 지은 우화

[김유경의 책씻이] <문명>(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21)

영화 ‘손님’(2015.07.09 개봉)이 떠오른다. 인육을 탐하는 쥐떼 CG의 잔상이 원색적 공포를 안겼던. <문명>의 최상위 포식자가 쥐여서다. 쥐 왕 티무르의 확고한 위계질서 하에 물불 안 가리며 펼쳐지는 서해전술(鼠海戰術)이 눈앞에 보이는 듯해 섬찟하다. 이마에 USB 구멍이 뚫린 “실험쥐366번”이었던 티무르가 인간, 고양이, 개, 돼지 등속의 무리무리 동물들을 혼비백산케 하며 지구촌을 횡행한다.      


하필 제목이 ‘문명’이라니. 4차 산업혁명으로 더더욱 대명천지가 된 세상에서 문명 운운이라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여러 차례 접속해 그를 좋아하는 내가 꿍얼거리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내리읽다보니 디지털혁명을 기반 삼아 물리적 디지털적 생물학적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 시대로 치닫는 세상이 걱정스럽다. 영화 ‘서복’(2021.04.15 개봉)에서 실험체 서복이 내뿜던 놀랄 만한 뇌파도 생각나고.  

   

<문명>은 암고양이 바스테드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바스테드는 작가의 소설 <고양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문명>은 <고양이> 2부인 셈이다. <문명>의 귀결을 보면 곧 3부도 출간될 것 같다. 어쨌거나 총 3막 구성이다. 제1막 지상 낙원, 제2막 제3의 눈, 제3막 유머, 예술, 사랑 등이다. 얼핏 제목만 보면, 막 구성은 주인공 바스테드 관점이다. 그런데……   

  

바스테드는" 제3의 눈"을 갖기 전에는 인간 문명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실험고양이 출신 피타고라스가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ESRA)>을 들먹일 때마다 뒤따르는 장(章)에 그 내용의 전후 맥락을 삽입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제2권에서는 두 고양이가 본 적 없는 확장판(ESRAE)도 삽입되고 있으니까. 주인공 시점에다 작가의 유의미한 주석을 슬쩍 보탠 독특한 구성인 거다.     

 

더욱이 작품 <개미>에 ESRA의 집필자로 등장한 로망 웰즈를 호명하고 있다. 바스테드의 전생 경험까지 아우르면 작품 <기억>도 자연스레 끼어든 거다. 그렇게 볼 때 <문명>은 작가의 소설 DNA가 낳은 콘텐츠 기획인 거다. 돼지 왕 아르튀르의 견해와,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어떤 생명 에너지가 있다고” 믿는 바스테드의 소통 열망 및 바람이 작가의 목소리로 들리는 이유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오. 세상은 그들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들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니까.”(제2권 98쪽)     


“「그런 다음에는, 생명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조화롭게 작동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이롭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해」(…중략…) 「내가 바라는 건 최소한 그 세포들이 경쟁과 증오와 적대감에 사로잡힌 정신들로 분열되어 상대방의 에너지를 도둑질하려고 싸우지는 않았으면 하는 거야.」”(제2권 260쪽) 

    

그런 관점에서 <문명>은, 베르나르가 소설 DNA로 지은, 우화다. 동서고금의 지식들을 참고하여 “동물을 이용해 인간을 가르쳤다”던 장 드 라퐁텐을 새로운 방식으로 잇는. 또 하나, <문명>은 <기억>에서처럼 숙명론자 여부를 딱히 밝히지 않는다. 바스테드가 중요 고비마다 떠올려 힘 얻는 “엄마의 말”은 생명체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지만, 바스테드의 전생 역시 바스테드의 선택에 개입하고 있다.    

  

암튼 코로나19를 호되게 겪은 전 세계가 ‘위드 코로나’로 향하는 지금, <문명> 속 인간의 패인을 복기할 필요는 있다. 백척간두의 위기가 일깨운 감각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긴장을 유지해 인간 문명을 지키려면. 하나의 지구촌으로 연계된 세계는 “항서(抗鼠)연합군 구축”처럼 연대해야 서로서로 안전할 수 있으니까. 결미에서 “울지 못해 웃는” 바스테드가 3부에서는 어떤 처지일지 정말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배우의 헛웃음에서 감독의 파안대소를 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