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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Dec 17. 2021

팬데믹 멜랑콜리아에서 뉴 노멀 콘텐츠를

[김유경의 영화만평] 유태오를 까발리다, <로그 인 벨지움>(2021)

영화 <로그 인 벨지움>의 제목은 벨지움에서 로그인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걸 풀이하는 건, 배우 유태오가 감독 유태오로 변화하는 계기와 실황이 영화의 콘텐츠여서다. 팬데믹 탓에 갑작스레 벨기에의 낯선 호텔에 고립된 배우 유태오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를 겪는 중에 영상 오디션 제의를 받는다. 그걸 삶의 동아줄로 삼으려는 궁여지책이 뉴 노멀(new normal) 콘텐츠로 발전한 거다. 


유태오는 스스로 상대역을 미리 연기해 태블릿PC로 녹화한다. 영화는 그 녹화된 영상에 맞춰 자기 대사를 연기하는 유태오를 보여 준다. 물론 태블리PC와 스마트폰으로 영화 만들기는 이제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영화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내딛는다. 대본에 없는 말을 뜬금없이 건네는 상대역 유태오에게 속내를 드러내며 대화하는 유태오를 연출한다. 상대역 유태오가 유태오 내면의 목소리로 변환되는 지점에서 나는 비로소 영화스러움을 느낀다. 


영화는 ‘외로움이 진짜 나를 만나게 한다’는 낡은 경험치를 “약하거나 외로울 때, 두려울 때, 네 안의 누군가가 널 지켜줄 거야.”라는 뉴 노멀 콘텐츠로 변주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시각화하는 연출을 통해서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멜랑콜리아성 영화가 좋은 유태오가 배우로서 털어놓는 고통과 갈망을 감독 유태오가 되어 다스리는 자전적 스토리텔링을 완성하면서. 팬데믹 멜랑콜리아에서 뉴 노멀 콘텐츠를 추출한 거다.


유태오가 상대 유태오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데 너는 어디에 있는 누구냐고. 상대가 묻는다. 너는 어디가 좋으냐고. 유태오는 현재가 제일 좋다고 한다. 과거는 상처 때문에, 미래는 걱정 때문에 밀치면서. 그렇게 유태오는 내면 관조로써 지금 여기에 충실하겠다는 마음이 된다. 그걸 영화는 요리를 통해 예시한다. 식재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호텔에서도, 귀국해서 지인들과 유대감을 쌓는 현장에서도 나름 요리한 음식이 살맛을 돋운다.

 

사실 난 배우 유태오가 낯설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관람에서 빼놓은 영화들에 출연해서다. 영어와 독일어 못지않게 한국어를 하는 독일 태생 대한민국 배우는 드문 존재다. 더구나 팬데믹 국면의 힘들어하는 대다수 사람들을 의식해, 신인남우상을 받아 성공 가도로 들어선 게 ‘특권을 누리는 것 아닐까’, 조심하는 마음새마저 보이니 더 그렇다. 유태오가 상대 유태오에게 한 마지막 물음, “우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들은 셈이다.


영화는 타인들의 견해에 귀 기울이는 유태오를 비춘다. <로그 인 벨지움>도 그 과정을 거치며 수정되고 보강되었음을 밝히면서. 각본, 연출, 촬영, 음악, 편집 등 다방면에 직접 뛰어들면서도 고집부리지 않은 거다. 일종의 마음 비우기다. 달리 말하면, 변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거다. 영화에서 유태오는 자유가 무엇이냐는 상대 유태오의 물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거”라 대답한다. 그 관점에서 유태오는 이미 자유롭다. 


<로그 인 벨지움>은 지금 여기에 충실하되 자유로운 배우 유태오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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