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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Nov 10. 2022

어머, 4층 건물이 “여우”네

[김유경의 영화만평] 홍 감독의 페르소나, <탑>

처음에는 ‘시력이 약해졌나?’ 자문했다. 칙칙한 흑백은 밀쳐두고라도 모든 피사체가 또렷이 안 보이니까. 영화감독 병수(권혜효 분) 외에는 거의 실루엣만 드러나는 캐릭터들은 병수를 둘러싼 군상 같다. 4층 건물에서 벌어지는 일화들이 대개 병수의, 병수에 의한, 병수를 위한 것들이어서 더 그렇다. 게다가 건물주 해옥(이혜영 분)이 들려준 층별 세입자들의 특성을 병수가 그대로 행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4층 건물의 수직 구조는 영화 속 시간 흐름을 반영한다.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게끔 영화 말미에서 초입 부분을 연상시키는 딸 정수(박미소 분)와 병수의 들고 나감으로써 홍상수 표 연출을 드러내긴 해도. 그건 세입자의 공간을 자기 공간처럼 드나드는 해옥이, 결국 그 공간들에 순차적으로 몸을 부리어 옥탑까지 삶 자락을 드리우는 병수의 몰락(?)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병수와 정수는 몇 년간 서로 보지 않고 지내는 부녀 사이다. 정수는 외도로 인해 별거 중인 병수의 인간성을 문제 삼는다. 밖에서는 잘 나가는 영화감독으로 인기가 많지만, 집에서는 여성적이고 겁도 많은 “여우”라고. 해옥은 밖에서의 모습이 어쩌면 진짜 병수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병수는 3층에서 선희(송선미 분)랑 동거할 때와는 딴판으로 옥탑에서는 지영(조윤희 분)과 육식에 소주를 마시며 하나님 계시도 운운한다.

      

또 한 번 그러니까 <탑>은 구체적 건물의 중층으로써 시간과 버무려진 병수 의식의 중층성을 시사한다. 사람을 가리는 건물주 해옥과 사람을 가리면서 만나는 병수처럼 외부를 향한 심층 의식을. 그건 홍 감독뿐만 아니라 인간 유기체가 지녔을 페르소나를 노출한다. 다시 그러니까 층별 공간의 조건(인연)에 따라 변화하는 병수를 품은 심층 의식인 건물은 병수의 열린 현존인 셈이다.    


(3층에서 선희와 동거하며 설겆이하는 여성적인 병수 )

  

그런 현존으로서 1층과 2층에서의 병수는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지만, 3층과 4층에서는 선희와 지영을 기다린다. 자기 말을 잘 듣기를 바라고, “예쁜 내 새끼”라고 품어주기를 바라면서. 카메라는 어디서든 (줄)담배를 피우는 병수의 낯에 앵글을 맞추어 허기가 채워지지 않은 고독을 밝힌다. 병수에게 그 허기를 달랠 공간은 “제주도”다. 별거 중인 아내가 그곳에 있고, 선희와 지영에게도 그곳에 갈 의향을 자꾸 밝힌다.  

    

작품 속에 홍 감독의 삶이 스며있다는 속설대로라면, 병수는 홍 감독의 페르소나다. 영화제작에 손 놓고 있는 병수는 잘 나가던 조선 양반계급이 귀양살이하던 제주도에서 영화 12편을 찍겠다는 포부를 드러낸다. 영화 밖 홍 감독은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선희처럼 “잃고 싶지 않아서 미친 듯이 버둥거리고 있는 발들”이 보여 두려운 걸까.    

  

문득 <탑>이 뜻하는 “제주도”가 궁금하다. 홍 감독의 작품 성향으로 보아 이상국가를 의미하는 아틀란티스류는 아닐 거다. 암튼 그의 작품들은 대개 피사체를 통찰한다. <탑>은 영화감독을 주요 피사체로 한 뜻밖의 영상이다. 시간의 흐름이라 꼬집을 수 없는 의식의 흐름을 연출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거나 밖으로 나서는 영화 끝의 정수와 병수가 초입의 그들과 같은 듯 다름을 숨은 그림 찾듯 보아야 알 수 있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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