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영화만평]왜 부모님은 세 아들을 북송했는가<수프와 이데올로기>
여든 넘은 강정희 여사 앞에 새 식구가 앉는다. 딸 양영희 감독과 결혼한 일본인 사위 아라이 카오루다. 그는 마늘 듬뿍 넣은 장모 표 닭백숙을 손수 끓여 밥상을 차린다. 그 닭백숙의 진한 국물이 영화 속 수프다. 그 훈기를 타고 재일 코리안 양 감독의 아픈 가족사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펼쳐진다. 양 감독의 의문-집에 어머니 이름의 문패를 달만큼 낭만적인 아버지가 왜 세 아들을 북으로 보내고, 어머니가 왜 북송한 일가친척 모두의 가장이 되었는가-이 풀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 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오버랩된다. 사실 관계를 밝히는 보도들을 접할 때마다 쌓였던 기막힘이 다큐멘터리 속 강 여사의 당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끔찍한 일이 벌어져.”를 마주하고 울컥거린다. 제주 4・3사건을 겪은 지 70여년이 지난 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숨죽이는 삶은, 강 여사만의 애씀으로 나이질 수 없는, 공권력이 빚은 참사 탓이다. 그런데 ‘압사’ 문자를 여러 번 받고서도 제때 출동하지 않은 2022년 한국 경찰이 다시 “이게 국가냐”에 한몫하니 문제다.
양 감독의 부모님은 조총련 활동가다. 집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걸고, “인간 선물”로 보낸 큰아들에 이어 남은 두 아들과 친척들도 북송시킨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강 여사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에는 수령님이 나온다. 사윗감으로 미국놈과 일본놈은 절대 안 된다던 그 집에 일본인 카오루가 한국식 닭백숙을 함께 즐기는 식구가 된다. 문재인 “두목”이 한 약속, ‘조선 국적자의 대한민국 입국 허가’에 따라 70여년 만에 고향 제주를 찾는 강 여사 모녀와 동행하는.
카오루는 기자이자 문필가다. 화면 속 그는 입을 열기보다 공감하는 몸짓으로 아내와 장모에게 다가선다. 한국식으로 전통 결혼식도 한다. 제주 4・3사건 연구소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내를 말없이 달래는 그를 응시하며 나는 그나마 안도한다. 2019년 7월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해 수출 규제를 선언한 이후 계속되는 일본 정부의 오만・방자함을, 그리고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배상금 협의를 하면서 일본 주최 관함식에 해군 함정을 보낸 한국 정부의 굴욕 외교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면서.
화두는 풀리지 않는 의심이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내게 화두를 들게 한다. 영정 사진&위패&희생자&근조 등이 사라진 이태원 참사 관련 분향소 운영이 그걸 강화한다. 이토 히로부미 사망 소식을 들은 순종이 위로 전문&조문&시호 하사 등으로 굽실거리어 공분을 위해 목숨 건 안중근을 일개 테러리스트로 만듦이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 속 과거사에 불과한 게 아니다. 국가 수장이 일신의 안위를 위해 제2의 안중근을 낳는 역사가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2022년은 제주 4・3사건 74주기다. 강 여사의 약혼자는 당시 죽었지만, 그의 생존 가족은 희생자 명단에 이름 올리는 걸 마다한다. 수틀리면 언제든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무리들이 도처에 있으니까. 일본의 관점으로 안중근 의사마저 테러리스트라고 버젓이 주장하는 국내 역사학자가 한둘이 아니니까. 성역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처럼 공권력의 행태나 역사의 향방은 누구나의 일상이든 끼어든다. 강 여사처럼 이 땅을 떠나거나 기억 상실에 말미암지 않은 채, 굳건히 어깨를 겯고 과거사에 자재하는 수를 나름 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