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영화만평]사회적 약자의 자존적 캐릭터,<나, 다니엘 블레이크>
고달픈 삶을 달구는 에피소드 속 감정변화가 도드라진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 흐름을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 분) 캐릭터에 맡기며, 사회 복지가 마련 못한 감성적 비상구를 선보인다. 다니엘 밖 세상이 그를 조종할 수 없다는 물기 어린 단호함을 지펴 전달한다. 결국 고용수당에 목매는 사회적 약자가 자리를 박차며 토한다. “자존심이 없으면 끝이야.” 그 인간 존엄이 2016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움켜쥔다.
불확실성이 높은 사회에서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불상사에 노출되기 쉽다. 실업수당마저 거절당해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한 다니엘이나 기초수급자에서 제외된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 같은 소외계층만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게 아니다. 2050년에는 1인가구 39.6%(905만 가구) 중 60세 이상이 58.8%일 것이라는 지난 20일 통계청 발표 ‘장래가구추계(시도편): 2020~2050년’이 그걸 시사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회안전망의 구멍을 클로즈업한다. 관공서 외벽에다 페인트 글씨로 외쳐야 할 만큼, 또 다니엘의 죽음으로 환기되어야 할 만큼 크게 뚫렸지만 편의에 가려진. 영화는 그 구멍을 땜빵하는 이웃사촌들도 조명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 치우지 않아 다니엘의 잔소리를 듣는 막일꾼 청년이 컴맹 다니엘의 온라인 신청을 돕고, 케이티의 딸 데이지(브리아나 샨 분)는 두문불출하는 다니엘을 노크한다.
도덕적인 언행의 독거노인과 컴퓨터 해외 직구로 돈 버는 청년 간의 세대 차이가 역지사지의 정감으로 좁혀진다. 다니엘이 그냥 케이티를 돕는 마음과 닮은꼴이다. 암담한 집안 분위기를 감미로운 왈츠풍의 ‘항해 Sailing By’로 갈음해 준 다니엘을 데이지가 본뜨는 것 또한 그렇다. 그 맥락에 BBC 라디오 새벽 일기 예보 시그널 뮤직을 역경을 견디는 순풍의 메시지로 띄우는 연출은 ‘신의 한 수’다.
영화는 그 온기를 바탕으로 캐릭터의 비장함을 불뚝한 직설 대신 자존적 신으로 과묵하게 처리한다. 고용수당이 물 건너갔다고 여긴 다니엘이 생계비를 마련하려 가구집기를 파는 게 이웃 청년에게는 이사하는 것으로 비친다. 허기를 달래는 수준의 무료 배급으로는 감당 못할 남매 뒷바라지를 위해 성매매를 택한 케이티가 다니엘의 말림을 내치는 간절한 선택 역시 자기 삶을 책임지는 캐릭터 형상화다.
일상에서 영웅은 불특정하고 멀리 있지 않다. 다반사가 된 부조리한 관공서 업무 처리에 대해 일반적이지 않은 언행을 하여 내심 박수를 보내게 하는 대상도 영웅일 수 있다. 다니엘이 사회적 약자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관공서 외벽에다 페인트로 시위하는 것에 대해 지나가던 행인들은 환호하며 응원한다. 상의를 벗어 다니엘에게 걸쳐주는 남자도 있다. 다니엘의 항의 “나도 시민이야”가 메아리를 일으키는 장면이다.
시민은 주민으로서 각종 권리와 의무가 있는 사회구성원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된다는 점에서, 모든 시민은 사회 복지 대상인 동시에 국가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할 수 있다. 고용수당이나 실업수당을 신청하게 됐을망정 다니엘 역시 버젓한 시민으로 살아왔고, 음식물쓰레기 처리나 온정 베푸기 등 도덕적 삶을 실천하며 여전히 사회 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시민이다.
그 지점에서 영화는 인간 존엄과 자존감이 불일치하는 바를 가리킨다. 전자가 타인을 아우른 관점이라면, 후자는 자기를 향한 내면 의식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회적 약자의 자존적 캐릭터를 창조해 사회안전망이 인간 존엄을 거스르지 않고 운영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사회안전망은 수혜자의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신적・심리적 요인도 참작하여 행해질 때 비로소 튼튼할 수 있으니까.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감을 선동적 목소리가 아닌 두 캐릭터, 다니엘과 케이티를 연출해 유도하는 켄 로치 감독의 응시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