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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Feb 26. 2023

60대 현역 시인의 웃픈 넋살

[김유경의 책씻이]  <내 삶의 예쁜 종아리>, 황인숙, 문학과지성사

친구 여동생은 캣맘이다. 2022년에는 <덤덤아 우리집 가자>도 냈다. 친구는 오후 3시면 아파트 단지를 돌며 밥을 주는 여동생이 고양이 밥그릇이나 집이 없어져 흥분했다는 얘기를 카톡 사진과 문자로 띄우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몽고군(외부 길냥이) 때문에 열흘쯤 사라졌다 나타난 쿠키 얘기를 전했다.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에도 이런저런 캣맘의 실루엣이 보인다.      



     어제도 그제도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시비 걸던 남자 노인

     오늘도 난닝구 바람으로 나와 있네

     나도 모르게 고개 치켜들고

     “루저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루저! 루저! 루저! 루저!

     루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구!”

     내 서슬에 

     지나가던 청년 흠칫 쳐다보고

     노인은 꼬리를 감췄네

     세상에,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칠십 줄에 가족 없이, 에어컨도 없이

     하숙방에 사는 사람한테

     아, 내가, 내 입에서!     

     루저가 루저한테 생채기 주고받는

     열대의 밤     

                                 - 「슬픈 열대」 전문          



몸을 거느리고 정신을 가다듬는 황인숙의 넋살이 웃프다. 가시 돋혀 기세등등해 보여도 상대적 하부구조의 삶에서 발끈하다 몸 둘 바 모른다. 여느 캣맘에겐 일상적이어서 사소한 상처일 수 있지만, 흉터가 될 포기 대신 차지게 응수하다 맞닥뜨린 윤리적 속내가 우뚝하다. 예나 지금이나 황인숙의 시에서 발견하는 헛웃음의 시니피앙이다.   


그것은 “이 무슨 헛웃음 없이는 읊을 수 없는/짬뽕 뽕짝 같은/삶이란 말이냐/죽음이란 말이냐”(「겨울 이야기」 부분) 같은 화냄도, “더위 따윈 내 인생에서/아무 것도 아니라네”(「이렇게 가는 세월」 부분) 같은 달관 비스무레함도, “발갛게 한숨”(「11월」 부분) 같은 유채색 숨결로 쳐낸다. 건강한 비장이 면역체를 유지하는 방식처럼. 


         

     이 또한 지나갈까

     지나갈까, 모르겠지만

     이 느낌 처음 아니지

     처음이긴커녕 단골 중에 상단골

     슬픔인 듯 고통이여, 자주 안녕

     고통인 듯 슬픔이여, 자꾸 안녕     

                             - 「Spleen」 전문 


         

그렇듯 “자주 안녕” 또는 “자꾸 안녕”하게 되는 루저의 삶에는 오르막길이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우하는 “예쁜 종아리”(「내 삶의 예쁜 종아리」 부분)를 가꿀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구순하게 어울리려 본뜬 말에 덧댄다. “나는 잘 지내요./틈틈이 삽니다만……”(「나는 잘 지내요」 부분) 그 시적 페르소나를 마주한 내가 부스스 깨어나 꿈틀거린다.  

    

모처럼 황인숙의 시집을 잡고 내리 두 번 읽는다. 6학년생 독거노인의 웃픈 넋살이 반갑기 그지없다. 부족한 경제 형편이어도 까칠함을 잃지 않은 윤리적 현장이 시집 도처에 시적으로 녹아나 있다. 젊을 때 반짝 떴다가 소식 없는 시인들이 부지기수인데, 현역 시인으로서 자기다운 날것을 여전히 읊는 원숙함에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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