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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pr 07. 2017

부럽다면 지는 게 아니라 닮을 시간이다

내 식대로 내 마음 다독이기


미워하며 닮는다는 말이 있다. 미운 거 자체만으로도 괴롭고 참기 힘든 일인데 심지어 그 모습을 닮게 된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니 싫은 건 닮고 싶지 않아서라도 미워하지 않을 오기 정도는 있어야 한다. 직장동료든 시댁이든 나와 맞지 않고 미운 마음이 드는 것에서 시선을 거둘 수는 없을까?   

   

미워하다 닮을 때까지 가려면 사실 미운 채로 그 마음을 흘려두거나 수동적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부러움이란 감정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요새 말로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까지 하니 사실 부러움도 쉬운 감정은 아니다. 어쩌면 미움의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어 완벽히 반대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부러운 요소를 제대로 인지하고 의식해서 닮아간다면 이것은 적극적인 선택이고 나에게 플러스 요인이기까지 해서 어쩌면 너무 매력적인 타이밍일 수 있다. 한 때 나도 부러운 것이 참 많았다. 특히 어린 시절, 엄마가 집에 있는 아이들, 학교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아이들, 유독 선생님과 친한 아이들을 보며 그게 부러운 감정인지도 모를 정도로 다른 세계라 여겨지는 신기하다는 감정을 느꼈고 그 느낌은 곧 소외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오로지 내가 집에서 제대로 케어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의 영향뿐 아니라 자신의 성향이기도 한 그런 행동과 상황에 대해 어린 날의 나는 나에게 설명해주고 다독일 여력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잠시지만 집밥에 집착하고, 예쁜 집 꾸미기에 사활을 걸고, 가정에 충실해 보이는 무언가를 혹독하게 수행하려는 나의 행동들은 어린 날 외로웠을 나를 돌보는 일이었단 걸 알았다.      


그러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며 내가 불행하기만 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는, 내 부모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놓아줄 수 있었다. 게다가 성인이 되어 대학생활을 하거나 회사를 다니면서 늘 정보가 있고 관심을 받는 위치에 있게 되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경우라도 누군가에 의해 '선택' 될 수 도 있고, 어쩌다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사람의 역할이라고 여겨졌던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지자 그건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인데 뒤늦게 발현된 것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내 눈으로 바라보고 부럽다고 인식한 순간으로부터 나의 방향성이 그곳을 향하고 있었는 조금 궁금해졌지만 사실 지금도 정확히는 알 길이 없다.


지만 잘 들여다보면 늘 계기는 있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나는 무얼 부러워하고 동경하는지 알 수 있다. 그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삶의 태도나 스타일을 찾아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을 찾아내면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가치 있게 써야 하는지가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마음에 동요가 일고 감정이 일렁일 때, 시기와 질투에 화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 때, 무언가 에너지가 솟구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바로 ‘그때’라고 생각한다. 그건 사실 그 상대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나를 키우고 채울 연료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 부러움의 포인트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를 잘 이용해야 한다.        


물론 피하고 싶은 때도 있고, 외면하고 싶은 때도 있다. 바로 보는 것이 두렵고 아파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덮어두고 버거운 노력대신 그냥 아무 것도 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왜 나에게는 처음부터 원래 내 것이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과 능력을 쉽게 내어주지 않은 것인지 원망스러운 적도 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얻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고수일 확률이 크다. 살아보니 저절로 얻어지는 건 별로 없더라. 그러니 우린 그 사람들의 입이 열리길 빌고 빌어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     


한 때 나는 돈은 나를 위해 쓰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겼고 버는 족족 써버리는 것을 당연시 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져도 불안해하지 않고 만족하려 애썼다. 그러다 비슷한 기간을 일하고 훨씬 많은 돈을 모은 사람이 슬슬 눈에 보이고 나는 그동안 무얼 한 걸까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내 지난날을 후회하고 곧 자신을 자책하게 될 것만 같았다. 새로운 어떤 노력보다 그게 더 쉬운 길이니까. 나는 감정을 돌려세우고 부러운 감정이 드는 이때가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 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면 내 시선과 관심을 끌고 눈에 담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게 하며 온 신경이 쏠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 늘 단정한 사람, 감정에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무심하지도 않은 사람. 나는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그 행동을 조금씩 흉내 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 후임들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남편 지인들이 나를 칭할 때 비슷한 요소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던 그런 모습을 꼭 닮았노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애써 노력한 시간들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나를 조금씩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삶에 있어 결혼은 남자에게도 당연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특히나 여자에게는 엄청난 사건인 듯하다. 결혼 자체로 인생 자체가 뒤흔들려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 결혼생활을 잘하고 있는 친구나 지인이 보인다면 그 결과를 의아해하지 말길 바란다. ‘어째서 저 사람 행복한 것일까?’ 그 사람이 유별나게 행복하고 이상하게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놓아버리고 내가 놓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그 사람은 어떤 희생을 하고 나는 포기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때다. 자신도 그럴 용의가 있다면 그런 성취를 인정해 똑같이 행운을 거머쥐면 되고 아니라그땐 그 사람과는 다른 것에 몰두하면 된다.     


매사에 꼼꼼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듯 일을 하는 동료가 있다. 저런 집중력으로 일을 하면 매번 진 빠지고 지치겠다 싶은데 그 와중에 재무 관련 자격증을 따고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샘이 났, 나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미혼이니 가능한 일이라고,아이가 없어서 시간이 많은 거라고 되지도 않는 자기 위안에 빠지는 것은  나 편한 핑계일 뿐이고 결국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자유롭고 더 여유로운 사람도 자기계발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우린 어쩌면 누군가의 노력을 보기보다는 그 결과만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똑같이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야하는 것일까? 그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일까?무작정 따라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게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고민해야하는 포인트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나에겐 글쓰기이다. 그러니 나는 글 쓰는 일을 놓을 도 없고 게으름을 피우더라도 질릴 일도 없을 듯 하다. 평생을 다른 무엇보다 ‘글을 맛깔나게 그리고 술술 잘 읽히게 쓰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고, 나는 그걸 닮고 싶은 것일 테니까. 어쨌든 미약하게라도 그 길목에 들어서는 행운을 얻었으니까. 우리, 부럽다면 지는 것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 부러움을 닮아보자. 당장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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